나오시마섬 지중미술관을 거닐며
Walter de Maria
‘월터 드 마리아는 세밀한 치수와 함께 공간을 제시하고 그 공간에 직경 2.2m의 구체와 금박을 입힌 27개의 목제 조각을 배치하여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작품 공간의 입구가 동쪽이기 때문에 일출에서 일몰 사이의 작품이 시시각각 변화합니다.’ - 지추미술관 관람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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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에서는 분명하게 시간이 보였다. 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구 위에는 네모 난창이 뚫려있는데, 이 창문을 통해 구를 둘러싼 스물일곱 개의 목제 조각이 그림자를 만들면서 시간의 길이를 그려낸다. 그러나 내가 방문한 날은 구름이 두터워 시간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웠고 다만 구 정(正) 아래에 옅은 그림자가 진 것으로 보아 점심 즈음인가 보다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은 흰 종이만큼 희부연 기분이 공간을 메웠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꼼짝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직경 2.2M의 거대한 구만이 존재했다. 오점 하나 없는 완벽하게 둥그렇고 매끈하고 단단한 원형의 구를 보며 나는 사라진 시간 속에 무력함을 느꼈다. 나는 얼마나 유한한가. 그래서 시간이 우리에게 다 무슨 의미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가. 이내 나는 찰나에 스친 이 생각이 얼마나 희망인가를 되새겨보았다. 시간을 의식하고 있는 것은 새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오로지 나뿐이었다.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오래’라는 형용사로도 표현 못할 어떤 ‘영원’ 속에서 그 검고 둥글고 매끄럽고 단단한 구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세상의 ‘풍파’커녕 바람 한 오라기도 그곳엔 없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끝에 멸망이 찾아와 존재하는 모든 사유가 헝클어진 대도 원형의 구는 심해 그 어딘 가에 분자로서 라도 존재하리라. 시간이 흐르지만 영원히 존재하는 그곳에. 오로지 변하는 것은 어설픈 육신으로 검은 구를 바라보고 있는, 물컹한 살과 유약한 뼈를 가진 나뿐이라는 것을. 구 바로 위로 난 기다랗고 네모난 창문 위로 보이는 세상은 구름이 덮어 그저 하얗거나 거뭇하기 만한 어느 날. 구의 그림자가 구의 정 아래에 놓인 것을 보고 해가 중천에 있음을 간신히 알아챌 뿐이다. 분명하게 그곳엔 그림자가 존재하고, 그림자가 움직이고, 그림자가 흐리고, 선명해지기를 반복하지만. 아라비아 숫자 따위는 없는 그곳에.
서른 초봄
얼마 전이었다. 동네를 산책하다 작은 서점에서 동화책 하나를 만났다.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책이었다. 시를 읽다가 자기 잇속은 생각도 않는 선배 하나가 생각나서 책의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그냥 좀 지면 안 되겠느냐고, 답장이 왔다. 그녀다웠다. 그녀와 달리 나는 좀처럼 질 줄 모르고 삼십 년을 꽉 채워 살았다. 아빠는 내가 어릴 적부터 ‘비싼 밥 먹고 맞고 다니지 마라’ 고 가르치셨다. 실은 아빠의 가르침이란 대게 그랬다. 얻어터질 바에 때려라, 기죽지 마라, 공부는 몰라도 달리기는 일등 해라. 아빠의 가르침에 따라 나는 비싼 쌀밥을 양껏 먹고 맞을 바에 힘껏 때렸다. 가난했지만 가난한 줄도 모르고 대차게 자란 것은 어쩌면 아빠가 심어준 촌스럽고 말도 안 되는 개똥철학 덕분일지도 모른다. 아빠의 품을 떠나고도, 또 아빠가 떠나고도 오랫동안 나는 힘을 빼는 법을 몰랐다. 늘 최선을 다했고, 노력했고, 인내했다.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줄로만 알고 힘차게 십 대와 이십 대를 살았다.
우리 집 사정으로는 공부밖엔 탈출구가 없겠구나 싶어 뒤늦게 공부에 뛰어든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동안 영어문제집만 스무 권을 넘게 풀어헤쳤다. 하루에 한 권 꼴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려고 8학기 동안 악착같이 장학재단에 지원했고, 나는 무사히 전액 장학금을 받고 졸업했다. 아빠가 떠나고서 첫 직장을 퇴사한 후 꼬박 2년을 월 120만 원 받아 가며 치열하게도 살았고, 이윽고 정착한 회사에 입사한 지 5년 차. 이백 개의 체크리스트와 함께 2박 4일짜리 출장을 떠났다. 나는 36시간을 맨 정신으로 깨어 있으면서 체크리스트를 해치우느라 분주했다. 99%의 체크리스트를 달성하고 돌아와 나는 침대에 쓰러져 24시간을 잤다.
나는 대게 책임감 있게 임했고, 주어진 것을 열심히 했고, 목표를 향해 가열차게 달렸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앞만 보며 질주하는 경주마 같다고 했다. 맞는 말이어서 나는 무릎을 탁 치며 깔깔깔 웃다가 울어버렸다. 나도 이런 내가 힘들었다. 때로는 몸이, 때로는 마음이. 힘든 것은 주로 후자였다. 열심히 했는데, 왜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을 때. 최선을 다해 달렸는데, 무엇을 향해 달렸는지 모르겠는 날들이 늘어났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과 최고의 답안지라고 생각한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는 자주 길을 잃었다. 아마도 문제는 꿈 자체가 아니라, 나에게 있는 듯했다. 내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은 내가 이뤄야 하는 꿈이나,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 일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꿈이라고 여긴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난 뒤였다.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큰 혼란이 벌어져요. 영혼은 머리를 잃고, 사람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거죠. 영혼들은 그래도 자기가 주인을 잃었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보통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 잃어버린 영혼 중에서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직장에 입사한 그러니까 축제 기획가로서 나는 뉴욕, LA, 도쿄, 홍콩, 파리 등 세계적인 대도시에서 K-POP공연을 기획했고 행사는 적게는 2만 명에서 많게는 10만 명이 방문했다. 2~3일의 공연을 위해 우리는 일 년 전부터 행사를 기획했고 행사가 가까워지기 한두 달은 거의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끝없이 업무에 시달렸다. 행사를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을 마주할 때, 그들의 얼굴에 맺힌 긴장감과 흥분, 그들의 환호성, 그것들을 보는 순간에는 희열이 있었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오는 업무적, 관계적, 구조적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더 완성도 있게 하기 위해서 나는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했고 손목에 통증이 와도 두통이 심해져도 밤잠을 이루지 못해도 그렇게 그렇게 하루하루를 인내했고 행사를 끝낸 후에 찾아오는 잠깐의 여유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열다섯 번째 행사를 준비하던 즈음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메일이 도착한 진동만 울려도, 나를 괴롭히는 관계들의 초성만 보아도 눈물이 가슴이 두근거렸고, 온종일 간신히 마음을 부여잡다 늦은 밤 현관문에만 들어서면 왈칵 눈물 콧물 쏟아내는 몇 달을 보내고서야 내가 무엇을 위해 힘든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문득 나는 꿈만 남고, 나는 사라진 삶을 목도했다. 내가 먼저 있어야 하는구나. 그래야 삶이 있다. 바보 같지만 나는 그 사실을 그동안 알지 못했다. 내 꿈보다 중요한 나 자신. 그것은 내게 꽤 신선한 일이었다. ‘열심’이나 ‘최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면 바로 나를 위함이다. 나는 나를 위해 열심히어야 한다. 나의 꿈이나 나의 실현, 그 무엇보다 그저 나 자체. 내가 없이 달려온 곳에는 행복이 아닌 행복의 조건들만 있었다. 그 무렵 적은 일기이다.
어슴푸레하게, 나는 왠지 모르게 차갑고 딱딱한 이 황량한 대지가 불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서있었다. 나는 사막의 선인장도 도마뱀도 때로 허공을 가로지르는 어느 이름 모를 새도 아니었지만 표면에 미세한 부스러기만이 남은 황톳빛 암석 위에 서서 먹먹한 하늘 속에서 반짝이는 별을 때로 보거나 푸른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어깻죽지까지 오한이 올라올 때면 이내 내가 이곳에 그리 적합하지 않은 이방인임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늘 이런 풍경도 때로 좋다며 위안했다.
바람이 세차게 물어 먹 같은 하늘에 간신히 별이 매달린 밤, 발바닥에 분필가루처럼 묻던 황톳빛 모래들도 사라져 미동이라곤 모를 굳은 암석 위에서 세상에 숨겨진 비밀은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이나 세상은 분명해졌다. 바람은 너무 거세 심장도 서늘하게 지나쳐버렸고, 애초에 숨겨진 비밀은 없다는 걸 알았던 마음이나 모른 체했던 마음들까지 모두 날려버렸다. 오롯이 뼈와 심장을 추슬러 일어나 생각했다. 바람은 어쩌면 행운이라고.
윌터 드 마리아의 작품을 보며 나는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마도 흐린 날씨로 창문의 해가 하나도 들지 않았고, 그래서 시간이 기울어가는 것도 알 수 없어서였을 테다. 혹은 그게 아니더래도 삶은 어떤 점에서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내가 있든, 그렇지 않든. 영원 속에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찰나로 세상에 존재했고 그것은 내게 너무나 큰 무력감을 안겨주었으나 이내 그보다도 큰 안정감을 주었다. 지금 이 순간, 그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해도 좋다는 사실이 공기 속에 다가왔다. 뜨겁게 끓는 삶 속에 내 마음은 다시 차가운 사막 위에 서 있었다. 차가워진 이성의 언덕에서 오히려 나의 영혼은 분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성취해온 결과물이나 흔적들이 아닌, 그저 나.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 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