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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seen Universe Jan 04. 2020

12화. 당신이 찾는 것은 이미 당신에게 있다.

나오시마섬 지중미술관을 거닐며




모네의 수련


지중미술관  / 모네의 '수련'

미술관을 거니는 동안 생각은 부유했고 시간은 멈춰버렸다. 지중미술관에 걸린 모네의 수련 앞에 서서 나는 어떤 아득한 시간을 느꼈다. 작품 너머로 나는 모네와의 연결됨을 느낀다. 우린 어쩌면 영원을 걸어가는 영혼이라는 점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겠지. 이 하이얀 공간에 시간은 없고, 순간만 존재하기를. 


이내 눈물이 벅차올랐다. 수련을 모며 나는 눈물의 근원을 어렴풋이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은 너무나 축복이었다. 이 시간, 이 공간에 존재함이.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함을 완전히 깨달아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 그곳에는 부족함도 넘침도 없었고 오로지 충만함만 있었다. 내 몸과 내 마음과 내 영혼이 한 곳에 거하며 나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수련을 그리는 모네와 눈앞의 수련을 함께 마주했다. 




영원함은 곧 현존함을 의미한다. 이 둘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로 존재한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 현주와 나는 아직도 마르지 않는 오솔길을 걸어 내려왔다. 올라가면서 보았던 모네의 정원을 위한 길잡이 꽃들을 다시 보았다. 꽃들이 참말이지 어여쁘게 심겨 있었다. 비 맞은 이파리들은 촉촉하게 빛이 났다. 파아란 나팔꽃의 시원하고 달콤한 기분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했다. 분명하게 지금이 늘 거기 있는 전부였다. 



현주와 나는 나오시마의 선착장 근처로 나아가 따뜻한 팬케이크를 먹었다. 오물오물.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승진 축하해!’ 평소에 나를 아끼시던 팀장님의 축하 문자였다. 승진을 했구나. 나는 다시 현주를 마주하고서 남은 팬케이크를 마저 해치웠다. 커피로 맛있게 입가심도 했다. 


배를 타고 다시 시내로 나가는 길은  때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저 현주와 남은 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이제 지금의 나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 당장 행복하고 싶을 뿐이다. 승진을 하거나, 멋진 것을 갖거나, 멋진 곳을 가고 싶다는 욕망 말고 그게 무어든, 나는 지금 앞에 있는 것에 온 삶을 바치려고 한다.





열아홉, 영혼의 소리

나는 어쩌면 그날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눈에 보이는 손과 발, 깜빡이는 속눈썹과 같은 육체 말고, '이걸 하고 싶어, 저걸 하고 싶어. 저건 옳고 이건 그른 거야.'라고 판단하는 마음 말고, 그 보다 더 깊은 조용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외부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여름 영어캠프를 주최한다며 장학생들을 초대했다. 달리 성적도 오르지 않는 긴장감이라곤 없는 고2 생활을 하던 나는 흥미롭게 여기며 영어캠프에 참여했다.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장학생들이 모여 도착한 곳은 장학재단을 운영하는 기업의 연수원이었다. 넓은 잔디가 펼쳐져 있었고 여름 햇빛 아래 무성한 잔디는 풍성한 풀내음을 뿜어내며 우리를 맞이했다. 열여덟 인생에서 만났던 그 어느 곳보다 훌륭한 곳이었다. 깨끗한 숙소, 친환경 급식, 어딜 가나 따뜻하게 맞아주는 임직원들. 나는 도착부터 그곳이 그리워질 것만 같았고 세상에서 자주 경험해본 적 없는 환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어 선생님들은 대부분 아이비리그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로 구성되었다. 그중에는 캐나다로 이민 간 교포 선생님도 계셨고, 책에서나 보던 하버드에 재학 중인 선생님들도 여럿 있었다. 내가 언제 이런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부풀어 오른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첫 수업에 들어갔다. 소규모의 그룹을 구성하여 선생님과 프리토킹을 하는 시간이었다. 당시의 나는 전형적인 내신 위주의 문과생이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2년 도합 11년의 시간 동안 학원은 구경도 해본 적이 없고 그저 교과서로만 영어를 만나고 접한 게 다였다. 나는 단 하나의 문장도 구성하지 못하고 띄엄띄엄 단어를 열거하며 간신히 나의 뜻을 전달했다. 수업은 하나의 방에서 다른 방으로, 또 강당으로 이어졌다. 



수업을 들으며 하나 둘 수상함이 느껴진 것은 대부분의 내용이 성경과 관련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영어로 노래를 부를 때에도 모든 가사가 ‘나는 양이고, 목자를 따라간다네’ 하는 식이었고 수업 중의 일부는 영어로 복음에 관한 메시지를 듣는 시간도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캠프를 주최한 모기업은 기독교에 근간한 설립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졌고, 장학재단과 캠프 또한 뜻이 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물리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영적 도움과 복음 전파가 목표였다. 나는 종교가 없었지만 세상 물정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학생일 뿐이어서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찬송을 부르고 메시지를 들으며 영어캠프에 충실히 임했다. 



오후에는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물놀이 시간이 이어졌다. 해는 쨍쨍했고 무성한 잔디는 폭신폭신했다. 대학생 선생님들과 자원활동가, 그리고 그곳에 모인 초중고등학생들은 경계 없이 뒤엉켜 놀고 깔깔댔다. 숨이 할딱거릴 정도로 뛰고 뒹굴었고 그 시간은 너무나 생동감 넘치고 뜨겁고 유쾌해서 나는 집에 가기가 두려워질 정도였다. 물놀이를 마치고 우리는 수박과 복숭아와 옥수수를 먹었고, 처음 만났지만 이미 친구가 된 우리들은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나는 온몸이 이완되었고 정신이 깨끗한 물처럼 맑게 느껴졌다. 결국 새벽에 눈을 뜬 나는 다이어리를 들고 테라스로 나가 이곳에서 느낀 순간을 열심히 기록했다. 나중에 보기 위해서 나는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깨알 같은 글씨로 순간순간을 되새김질했다. 


새벽에 일기를 쓰던 테라스와 고등학생시절의 나


어느덧 해는 밝아왔고 저 멀리서 리스 선생님이 내게 걸어와 아침인사를 했다. 그녀는 눈빛이 선하고 웃는 것이 아주 고운 미국 국적의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주로 우리를 보살피거나 급식을 도와주거나 뒷정리를 맡아주거나 질문에 대답해주는 일을 맡았다. 그녀는 내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와 맞은편에 앉았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나는 어김없이 가져간 전자사전에 단어를 열심히 검색하며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묻고 대답했다. 이야기는 속 깊은 주제로 나아갔다. 부모님의 다툼과 이혼, 이후로 어려워진 집안과 같은 이야기. 그것은 그 전에도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털어놓던 닳고 닳은 이야기였지만 그날은 왠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스름하던 새벽은 이내 아침을 맞이했고 눈물을 훔쳤지만, 날씨처럼 개인 내 마음은 무척이나 가볍고 밝아졌다는 기분을 생생하게 느꼈다.



그날도 어김없이 수업과 식사와 쉼이 이어졌다. 특별히 그날은 주최 측의 고문을 맡고 계신 선생님과 1:1 면담이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열심히 놀고 있던 중 내 차례가 돌아왔다. 선생님은 아주 고운 중년의 여성이었다. 눈에 어린 사랑과 입가의 미소가 아름다운 분이었다. 나는 대화를 하기에 앞서 어디까지 나의 속 얘기를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어린 내게 이혼과 결손가정이라는 현실은 너무나 큰 사건이어서 그것을 빼놓고는 나를 온전히 이야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대게 솔직해지는 편을 택했고 그날 아침의 리스 선생님과의 대화처럼, 나는 그저 나 답게 솔직한 내 삶과 나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캠프가 끝나면 만나지 않을 사람이라는 생각에 나는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모든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낱낱이 열거할 수도 글로 적기에도 모든 것이 모자라고 지나친 어린 시절. 나는 삶이 고단했고 궁핍했고 또 억울함과 피해의식이 가득했다. 그 모든 이야기는 초등학교 2학년. 운동회를 위해 열심히 꼭두각시 연습을 하고서도 등교하지 못했던 그날 새벽에 벌어진 일로 시작되었고, 엄마가 떠나고, 아빠가 알코올에 중독되고, 내가 사랑하는 긴 머리를 자르고 우리 가족의 돈을 앗아간 자들이 우리를 키웠다고 떵떵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지와, 피해의식과, 비뚤어진 열심히 점철된 이후의 10여 년의 시간들에 대해 나는 조용히 때로는 꺽꺽 울며 이야기했다. 나와 선생님은 어느새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눈물을 꾹 삼키며 내 삶을 완전히 바꿔버린 한마디 말을 꺼내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게 쓰시려고 이렇게 너를 단련시키셨을까’ 



머리가 멍해졌다. 그 말은 내 인생에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말이었다. 정확히는 상처로 뒤범벅된 내 어린 시절을 최초로 긍정해준 어른의 말이었다. 내가 만난 어른들은 입시에 불리하니 엄마의 주민번호와 연락처, 직업을 알아오라는 담임선생님, 밀린 세를 받으러 찾아와 찢어진 내 눈을 바라보며 어디서 어른한테 눈을 부라리냐며 혼을 내는 옹졸하고 마음 가난한 어른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러므로 내게 그것은 예수든 석가모니든 알라든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내 가난함과 어려움이 어떤 큰 뜻을 위해 계획된 일이라면 나는 이보다 더한 아픔과 시련도 다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것은 내 삶에 찾아온 인생의 첫 번째 기회이자 빛이었다. 


캠프를 마치고 나는 다시 논밭을 지나 초라하게 놓인 가난한 나의 집에 도착했다. 주말에도 학교로 자습을 하러 가야 했던 나는 그 논밭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과 목덜미를 시원하게 하는 가을바람을 만났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가슴속부터 차오르는 감사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마주할 어떠한 어려움도 어려움이 아닐 것이기에. 햇볕과 바람과 지금이라는 순간에 나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었고 더 이상 가난을 모르고 지냈다. 캠프를 돌아온 뒤 참여한 경제체험대회에서 나는 전국 대상인 경제부총리상을 수상하였고 대학까지 무탈히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아빠는 공사현장에서 추락하여 허리를 크게 다치셨고 그로 인해 수험생활을 하던 고3까지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이어가야 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세상이 나를 돕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때 느낀 생생한 느낌을 잊지 못한다. 온 세상이 나를 돕고 있는 기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새로이 변화된 삶을. 내 삶은 완벽했다. 엄마이자 아빠이자 선생님이자 그 모든 것인 언니와, 언니를 내게 준 부모님. 내 삶에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준 선생님들과 함께 있어준 친구들로. 내 삶은 완벽했다. 공부할 수 있는 갈급함과,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체력과, 무턱대고 높은 목표에도 겁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로. 내 삶은 실로 완벽했다. 


살아있음으로, 살아냄으로, 살아감으로. 나의 모든 기도는 이미 완전히 이루어져 있었다. 모든 가르침을 세상은 내게 열아홉에 선물해주었다. 가난이라는 포장지로 오랫동안 선물을 뜯어보지 않았을 뿐. 






‘당신이 찾는 것은 이미 당신에게 있다. 당신의 앎의 근원은 합일됨 속에 있다. 당신 외부에서 무엇인가를 찾지 말고, 근원으로 돌아가 당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으라. (중략) 당신에 바깥에서 뭔가를 찾으려고 한다면 탐구는 실패하게 마련이다. 그 대상이 신이든 돈이든 차이가 없다. 생산적인 탐구를 하려면 무엇인가 얻어야 할 대상이 있다는 선입관을 버려야만 한다. 이 말은 당신이 어떤 이상적인 자아에 이르도록 성장한다는지 당신이 출발한 곳보다 더 나은 곳에 도달하겠다는 소망을 버리는 행동을 의미한다. 당신은 자신에서부터만 출발할 수 있으며 그 안에 모든 답이 들어 있다.’

디팩 초프라 <완전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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