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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seen Universe Jan 08. 2020

13화. 서른의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기도

2019년 7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보았던 벚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카페에 앉아 나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뜨끈한 바람에 나무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본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변하고 움직이고 흔들린다. 그런 점에서 꿈은 나의 명사가 될 수 없으며 언제까지나 동사로 존재할 것이다. 



과거의 나의 꿈을 박제하여 오늘의 나를 증거 한다면 그것은 한낱 과거의 영예에 사로 잡힌 체 미래로 나아가기를 겁내 하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살아서 죽지 않으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혹은 내가 뭘 싫어하는지 탐색이 아닌 규정을 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기보다 지금 나는 어떤 지에 관심을 갖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는 견고한 에고의 성을 쌓고자 했고, 나라는 성의 주인이자 하인으로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변했고 탄탄하게 쌓아 올린 나라는 상징들이 더 이상 나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생명체인 이상 세포 하나도 어제와 오늘의 나는 같을 수 없으며 그 둘을 동일시하는 건 오로지 내 에고 때문일 테다. 나는 그저 저 피고 지는 나무처럼 흔들리고 또 흔들리기를 바란다. 기꺼이 흔들린대도 매실나무가 모과나무가 되지는 않듯이 나의 본질은 그저 형형히 그곳에 있을 테니. 조금 더 그것을 믿을 용기를 내도 좋겠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서 그것을 자기가 싹 틔우려 하지 않는다. 씨가 스스로 싹을 틔워낼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식물로 자라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이 씨알 하나에 들어있음을 농부는 믿는다. 내가 열매 맺을 때를 재촉하지 않고 그저 자연스레 여물고 싶다. 내가 흔들리고 또 흔들려도 나는 결국 나라는 열매 이외에 다른 것을 맺을 수 없으므로 나는 오늘도, 지금 이 순간도 그저 내가 온전히 나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우주는 존재를 통하여 저를 실현한다. 그것은 단지 욕망을 품되 그것을 그냥 둠으로써 저를 실현하고자 하는 순수 가능성이다.



며칠 전에는 제주를 다녀왔다. 조용한 요가원을 찾아 하루 이틀 수업을 들을 요량이었다. 창문 너머로 별이 떠있었다. 적막함 속에 여느 때처럼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꼬리뼈부터 척추 마디마디 하나씩 반듯하게 세우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호흡을 전달한다는 기분으로. 이윽고 나는 발가락과 땅 어딘가의 경계가 사라지듯 하체가 땅과 하나 되며 온전히 흙으로 돌아감을 느꼈다. 



머리는 열리고 두 발은 땅 속 깊이에 스며들어 나는 분명히 깨어있지만 물질적 육체를 벗어나 자유로웠고 그 기분은 마치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내가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은 결코 소멸을 의미하지 않았고, 되려 육체 이상으로 존재하는 영혼으로서 자유와 홀가분함을 느끼게 했다. 영혼은 분명, 물질로서의 나 자신보다 훨씬 큰 의미로 존재함이 분명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나는 사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했다. 당시의 나는 독실했고 또 절실했으나 성경에서도 답을 찾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또한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꼴을 가졌기에,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디팩 초프라와 에크하르트 톨레와 닐 도날드 월쉬와 무수한 저자들의 책과 이야기를 통해, 또 모네와 윌터 드 마리아와 김환기와 여러 예술작품을 통해 진리를 이해하고자 했다. 지난 십여 년간 손끝으로라도 느껴보고 싶었던 그 본질을, 나는 깊은 호흡을 통해 잠시나마 내 것으로 받아들였고 충만함과 자유함의 바다에서 나는 오랫동안 행복했다. 


시작과 끝이 없는 무한한 가능성의 장에서 언제나 가없이 유영하며 살아가기를. 



그리고 그 언젠가, 육체의 한계에서 우리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의 아버지가, 조부모가, 그 윗세대들이 걸어온 길처럼 선명하고 분명하게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숨을 쉬는 것, 우리가 꿈을 꾸는 것, 우리가 사랑하는 일은 그 자체로 기적일 것이다. 코끝으로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동안에만 우리는 세상에 보이지 않는 많은 비밀들을 파헤치고 만날 수 있으므로. 



하루는 노을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나갔는데 해는 이미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고 노을만 길게 남아있었다. 해가 지고도 노을은 한참이나 바다를, 하늘을, 내 뺨을 붉게 물들였다. 나는 오랜 시간 졸린 눈을 비비며 회사로 향하고, 터벅터벅 집에 돌아왔다. 삶은 매일이 축복이었음에도. 살아있는 시간을 부디 귀하게 여길 수 있기를, 나는 다만 바랄 뿐이다. 



내 안의 잠잠한 영혼이여,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고, 스스로를 알기 위해 삶을 헌신하기를. 알고자 하는 모든 지혜는 내 안에 이미 새겨져 있음을 믿고 오로지 행함으로 지혜를 증거 할 수 있음을 상기하기를. 모든 기도는 이미 이루어졌음을 알고 오로지 감사함으로 삶을 바라보기를. 세상은 언제나 나의 거울과 같은 것이므로. 언제나 자유하고 가없이 사랑하기를. 두려워 말고, 증오하지 말기를. 남에게나, 나에게나. 그 끝에는 언제나 사랑만이 오로지 남길 수 있는 생의 정수임을 날마다 이해하기를. 서른의 내가, 나에게. 


**파란색 디팩 초프라 <우주 리듬을 타라> 중에서





2018.06.2-3 여주 강천섬

나무가 스스대는 소리만. 

뻐꾸기가 뻐꾹

주위엔 건물 하나 보이지 않는 너-른 들판

저-어 멀리 내용을 알 수 없는 말소리들이 때로 들려오는 밤


나뭇가지로 랜턴 걸이를 만들고

밤송이로 불을 지피는

새우를 까서 몸통은 밥과 볶아 먹고

머리는 구워 먹어 남은 것은 하나 없는 식단


속이 좁아 긁힌 내 상처만 바라보다

지독히도 깜깜한 밤이 왔는데

스스로 빛나리라, 생각했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는

문득 빛을 받아 다시 내뿜는 달의 빛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받은 빛을 다시 되비출 줄 아는 달은

수동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변화하다 꽉 찬 보름달을 만난 밤


나는 소원을 어디에 빌었나

두 눈을 편히 뜨고 볼 수 있던 빛은 무엇이었나

나는 어디에서 잠잠한 위로를 얻었나


홀로가 아닌 별들과 함께여서

더 아름답고, 더 슬프고.

그래서 밤길을 밝혔던,

어둠의 시간을 함께 지켜준,

난 그런 빛이고 싶은 게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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