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imsa

스트레칭2

by 오동

요가를 배우다 보면 사용하는 언어에서 거리감 혹은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말은 요가가 끝나고 하는 인사인 '나마스테'가 아닐까. 요가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은 산스크리스트어로 이루어져 있다. '나마'는 '존경하다', '스테'는 '당신에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나마스테'는 일상생활에서 가볍게 사용하는 인사말이라고 한다. 수잔 샤키아와 홍성광 작가는 <지극히 사적인 네팔>에서 '나마스테'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마스테가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내게 있는 신을 존중하는 만큼 당신의 신을 존중한다는 뜻이다.'는 내용이 나온다. 가벼운 인사말로 이렇게 깊은 뜻이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네팔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구절이었다.


'나마스테' 말고도 내 마음에 울림을 준 산스크리스트어가 있다. 기록학자인 김익한 작가의 <거인의 노트>를 읽으며,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함께 잘 사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첫 번째는 상생(相生)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바로 생각났는데, 두 번째 가치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무해함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가볍게 느껴졌고, 배려는 이타적인 느낌이 내가 원하는 것보다 과했다. 그렇게 꼭 맞는 단어를 찾아 헤매던 중 'Ahimsa'라는 단어를 만났다. 아힘사는 '해를 끼치지 않음'을 의미하는 산스크리스트어인데, 흔히 생명 있는 존재를 죽여선 안 된다는 ‘불살생(不殺生)'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폭력이나 살생을 금지하는 것을 넘어서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스스로에게 친절할 것을 말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과 스스로에게 친절할 것. 같은 뿌리에서 시작한 마음이지만 공존하기가 쉽지 않기도 하다. 남에게 친절하기 위해 본인이 괴로운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행동인가. 스스로에게 친절한 것이 중요한 이유는 사실 내 마음은 나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내 속을 모를 때가 있지만. 그래도 남보다는 내가 나를 더 잘 알 수밖에 없다.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났을 때 옷으로 다 가리고 있다면 나는 욱씬욱씬 쑤시는 아픔을 느끼지만, 남들은 그 사실을 쉽게 까먹고 실수로 만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왜 내가 다친 것을 까먹었냐고 남을 탓하고 속상해하기보다는, 본인의 상처를 잘 돌보고 나을 수 있도록 마음을 쓰는 것이 스스로에게 친절한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자신에게, 다른 사람에게,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에게 해가 없는 삶을 살라는 뜻의 아힘사를 오늘도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보낸다.


집 근처 요가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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