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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근육 Apr 12. 2023

공무원 하기 딱 좋은 39살

내 나이가 어때서

기본서 5권, 10개년 영어기출, 형광펜과 볼펜 몇 자루. 최소한으로 꾸린 생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오늘도 8시가 되기 전 도서관 출근을 완료했다. 시립도서관 열람실 환기 잘되는 구석진 곳에 베이스캠프를 치고, 자판기에서 믹스 커피를 뽑아 오면서 열람실을 스캔한다. 이곳에서 마주쳤던 익숙한 얼굴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다섯 중 두셋은 공무원 수험서를  꺼낸다. '얘네들은 어떤 선생님 책을 보나?' 매의 눈으로 그들의 책을 스캔한다. 나와 다른 강사의 수험서가 보이면 약간 불안해진다. 올해 지방직에서 함께 경쟁할 학생들이겠지? 불안감이 더욱 엄습해 온다.




내가 공무원 시험을 보았던 2015 ~ 2016년은 참 수험생이 많았다. 공무원이 워라밸 직장으로 포장되어 한창 인기를 구사하던 불과 7년 전이다.


내가 그 전쟁터에 뛰어든 것은 공부머리가 있어서도, 공직에 뜻이 있어서도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밖에 할 게  없었다. 한국에서 전문 자격증이나 특별한 경력 없는 35살 넘은 여성을 써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 당시 나는 호주에서 영주권 비자로 살다가 돌아왔는데, 구로디지털단지에서 2년간 몸 담았던 IT 회사가 폐업 직전이어서 뭘로 먹고살까 고민 중이었다. 도대체 나이 안 보고 뽑아주는 회사는 없을까?


유레카!
공무원 시험은 아무것도 안 본다며?


터널 속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 공무원은 자비로운 예수님처럼 따뜻한 두 팔을 벌려주었다.

"5과목공부하면 너도 할 수 있어!"


그렇게 나는 초롱초롱한 20대 대학생들이 준비한다는 공무원 시험을 서른 중반이 훨씬 넘어서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마음을 굳힌 후 출근길 지하철에서 9급 공무원 기출문제 앱을 깔고 살포시 풀어보았다. 그리고 과목별로 20~30점을 넘기지 못하는데 이런 된장이 따로 없었다. 하~


나는 4개월 뒤 국가직 시험에서 광탈을 하고,  본격적으로 지방직, 서울직 시험을  준비하였다.  신선도가 떨어진 나의 뇌는 방금 외운 것도 돌아서면 까먹기 일쑤여서 그동안 흥청망청 음주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던 수험생활이었다. 공부는 어릴 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효율적이고 보기에도 좋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 공부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서 시기가 좀 다를 수 있을 뿐이다. 공시처럼 차별 없고 정직한 취업 시험이 대한민국에 어디 있겠는가.

 

다행히 좋은 결과가 나와 2년 만에 용이 되었고, 39살 상큼한 신입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는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내가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라는 것이었다. 공무원의 꽃은 행정직이라는데 일반행정이라는 두루뭉술함이 얼마나 쉬워 보이는가. 그때는  일반 General 이 갖는 의미의  무서움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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