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혼밥을 시작한 것은 임용이 되고 일 년 정도 지났을 때부터였다. 공무원들의 점심시간은 여느 직장인과 크게 다를 바 없으나 특징이라고 뽑자면 서무 주무관이 계장이나 과장님의 식사를 살뜰히 챙긴다는 것이다. 직속 상사이니 그렇기도 하지만, 서무라는 업무가 그 팀의 총무이자 비서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관례로 굳어진 것일까. 넉살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내가 서무를 맡으면 참 아찔 했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5급 이상의 상사와 식사를 하거나 점심 회식을 할 때 "모신다"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나는 상사를 "모시는 날", 즉 특별한 점심 회식을 제외하고는 혼자 밥을먹겠다는 무언의 선언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MZ세대들이 저녁 회식을 거절하고, 점심시간에 샌드위치 등을 먹으며 혼자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마흔 살 늦깎이 공무원인 나도 아싸(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면서 소중한 점심시간을 나만의 휴식시간으로 보내기시작한 것이다. 집에서 간단한 음식을 싸가거나, 가까운 곳에서 김밥, 샌드위치 등을 먹으면 무려 40분의 휴식 시간이 생겼다. 나는 주로 산책을 하거나, 차 안에서 낮잠을 잤는데 불편한 차량 좌석도 잊을 만큼 꿀잠을 자고 일어날 수 있는 소확행이었다. 주차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하지만 집처럼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준 나의 경차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가끔은 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사회성을 크게 저버리지 않는 테두리 안이라면 매일 동료, 상사와 밥을 함께 먹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직장 동료라는 내부고객을 피해 쉬고 싶은 나의 일탈이 신선해 보였는지, 서운하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날 과장님이 오시더니
00 씨 밥은 먹고 다녀요?
하는 것이었다. 팬대믹 시대도 아니었던 그 시절 새롭게 부서에 와서 직원들과 소통하고 싶으셨던 과장님은 점심시간에 코빼기도 안 보이는 직원이 좀 특이해 보였을 것이다. 과장님의 애정 어린 농담 한마디에 상황 파악은 했지만, 나는 시장님보다 더 같이 밥 먹기 어려운 9급 공무원으로 불리며 소확행의 점심시간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나는 혼밥을 즐기는 내향적 인간이다. 그리고 식사가 사회생활의 연장선이 될 때는 스트레스로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독불장군처럼 살 수는 없으니 적당히 어울리되 적당히 숨구멍을 열어놓아야만 했던 것 같다. 점심시간을 이렇게 보내라는 법령이나 지침도 없는데 정답이 있겠는가. 슬기로운 공직생활을 위해 혼밥 하는 모든 공무원들의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