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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찬 이규봉 Jul 03. 2023

김진만 회장, 박종성 지사, 안병태 신부를 추모하며

정년퇴임 후 묘소를 찾다

   올해 2월에 그동안 재직하던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였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업적을 남기진 않았지만 소박하게 부모로서, 또는 조부모로서의 삶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의도로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며 회고록을 작성했다. 생각해 보니 대학에 입학하면서 지금 정년이 되어 퇴임하기까지 나에게는 많은 행운이 따랐다. 그중에서도 대학을 제때 졸업할 수 있게 지원해 준 세 분을 잊을 수 없다. 당시 동부그룹의 김진만 회장님과 박종성 강원도 도지사님, 그리고 가톨릭 학생회의 안병태 신부님이다.     

   나는 1975년에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에 합격했다. 기쁨도 잠시 입학금 마련이 시급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우리 집에서 사립대학교 입학금과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립대에 지원하는 그 순간부터 대학 등록금은 나의 몫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진학했다. 바로 이때 ‘동곡문화재단’에서 처음으로 장학생 선발이 있었다. 입학금은 물론 4년 등록금 전액을 지급하였다. 동곡장학생으로 선발된 나는 매 학기 등록금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 급박한 시기에 이 장학금이 없었다면 나의 대학 시절은 순탄하지 않아 제때 졸업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며, 따라서 교수직도, 지금의 정년퇴임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재단을 만드신 분이 바로 김진만 회장이다.                

제1기 동곡장학생들과 관계자들로 오른쪽 뒤 갈래머리의 안경을 쓴 이가 필자

   동곡(東谷) 김진만(1918~2006) 회장은 강릉 김 씨로 지금의 동해시 출신 사업가이자 정치인이었다. 당시 동부그룹(현 DB그룹) 회장이며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강원도 향토의 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해 1975년에 동곡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장학사업과 문화사업을 추진하였다. 나는 그 첫 번째 수상자로 입학금 전액에 해당하는 장학금을 받았다. 마치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1975년 1학기부터 지급되었고 4년 내내 받았으나, 안타깝게 1980년에 정치적인 외압으로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1년에 김준기 회장에 의해 ‘동곡사회복지재단’으로 다시 부활하여 지금도 강원도의 소외 계층 복지시설 등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남양주시 금곡동 농장에 있는 김진만 회장의 묘소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은 등록금이 해결된다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거주할 곳이 필요했다. 2학년이 끝나면서 가정교사로 입주한 곳에서 나와야 했다. 당장 다음 해에 거주할 곳이 필요했다. 이때 ‘새강원의숙’이 있었다. 이는 당시 신림동에 있던 기숙사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강원도 출신 학생들을 위하여 지어졌다. 거주할 곳이 필요했던 나는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 이 기숙사에 1977년부터 이듬해 졸업할 때까지 있을 수 있었다. 당시 하숙비에 비해 파격적으로 싼 월 5천 원으로 방학 동안에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이를 환산하면 사립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는 것과 거의 같은 금액이었다. 새강원의숙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비로소 나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숙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둘째 줄 눈감은 이가 필자

   박종성(1919~1978) 지사는 강릉 박 씨로 강릉 출신이다.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면서기부터 시작하여 삼척과 명주 군수, 춘천시장, 그리고 강원도 지사를 역임했다. 도지사 재임 중 도내 화전을 정리하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으며, 강원도만 추진했던 도청 공무원 복지 조림 관련 기록물 등 세계적으로 희소가치가 있는 귀중한 사료를 남겨 산림녹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도지사 임명 이듬해인 1974년에 ‘새강원장학회’를 설립하고, 이 사업의 일환으로 1975년에 강원도 출신의 서울 소재 대학생들을 위한 기숙시설인 ‘새강원의숙(현 강원학사)’을 전국 최초로 지었다. 이후 1989년에 관악구 난곡동으로 확대되어 이전되었고, 2002년에는 여학생을 위해 증축되었으며, 2016년에는 도봉구 창동에 제2의 강원학사를 준공하여 현재까지 5천 명이 넘는 기숙생을 배출했다. 지금도 강원학사(관악) 현관 로비에는 박종성 지사의 학사 설립 취지가 담긴 “강원도에 사람 없다는 말만은 듣지 않게 하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강릉시 강동면 하서동에 있는 박종성 지사의 묘소

   3학년을 앞두고 가톨릭 신자 학생에게만 주는 가톨릭 전액 장학금을 의도하지 않게 받게 되었다. 이미 외부장학금을 받고 있음에도 교내 특별장학금을 또 받았다. 당시 나는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전례분과에 속했고 레지오마리에 활동도 하였다. 학생회 담당이신 고 안병태(1931~1994) 신부님에게 자주 고민을 털어놓으며 상담을 받았는데, 내 사정을 잘 아는 신부님이 나도 모르게 추천하여 받게 되었다. 매우 인자하지만 강직한 분으로 나중에는 대학 이사장을 지내시기도 했다. 매 학기 B학점 이상이면 계속 받을 수 있게 되어 졸업할 때까지 받았다.               

용인 천주교 공원 예수회 묘역에 있는 알퐁소 안병태 신부의 묘소

   이 세 분의 덕으로 나의 인생은 순조로이 풀려 대학을 제때 졸업하였고, 희망하던 대학 교수가 되었고, 또한 명예로운 정년퇴임까지 하게 되었다. 어렵게 세 분의 묘소를 수소문하여 인사드리고 나니 만감이 교차한다. 한 번도 마주한 적은 없지만 세 분이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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