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를 돌보는 봄의 의식
어릴 적, 우리 집 뒤뜰에는 작약꽃밭이 있었다.
뒤뜰은 어른들의 손길이 닿질 않는다. 나에게는 그곳에 놀이 장소였다.
엄마에게 야단맞으면 도망치거나 심심하면 앵두나,포도를 따먹기도하고 대나무 밭에서 누워있기도 했다.
봄이면 작약이 수없이 피었다.
작은 봉오리가 손바닥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오르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참 경이롭다.
봉오리를 들여다보고, 손에 쥐고 놀고, 향기를 오래 맡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중에 흰 작약은 할아버지가 더 아꼈다. 약재로 더 귀하다고 했던기억이난다.
분홍 꽃송이들 중간에 흰색의 작약을 보면 더 꽃잎을 더 많이 따버리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매년 봄이 오면 작약을 기다린다.
짧게 피었다 사라지는 그 시간을 1년 동안 품고 사는 건,
어쩌면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돌봄받지 못했던 어린 나,
엄마의 고단함에 가려져 아무도 제대로 봐주지 않았던 나.
엄마는 작약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할아버지가 심은 꽃이었고, 뿌리는 약재로 쓰였다.
엄마에게 작약은 ‘시집살이의 상징’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서울 큰집으로 거처를 옮긴후
엄마는 그 작약꽃밭을 갈아엎고 땅콩을 심었다.
하지만 엄마가 좋아하던 백합은, 뿌리를 보전하며 여전히 키우고 있다.
친정에 돌아가서 백합을 볼때마다, 작약이 떠오른다.
작약꽃밭 끝에 피었던 백합과 작약이 교차한다.
나는 이시기만 되면,작약을 기다린다.
엄마는 고통스러운 시집살이의 기억이지만, 나는 그 어린시절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돌보지 못했던 마음. 외로움 쓸씀함이 교차한다.
나는 매년 봄마다 작약을 통해 다시 돌보고 있다.
내가 작약을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내가 나를 돌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향기를 맡고, 봉오리를 만지고, 피어나는 순간을 지켜보며 나는 그 아이를 안는다.
엄마가 보지 못했던 나를, 내가 대신 바라봐주는 시간.
아직 엄마를 미워하는것에서 간신히 빠져나오긴 했다. 하지만 화해하지 못했다.
그 감정은 여전히 길고도 복잡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아이를 내가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작약은 내가 피우는 기억이자,
돌보지 못했던 나를 안아주는 의식이다.
어린시절
이제는 내가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