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의 거리 사랑을 묻다.

-내삶의 벚꽃이 바뀌는 순간

by 봄의순간

“올해 벚꽃을 보며 떠오른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벚꽃처럼 스쳐 지나가는 순간 중, 다시 오래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나는 지나간 계절을 어떤 방식으로 그리워하고 있을까.”

-마음읽기 마음질문10기 중..


벚꽃의 오래된 꽃말은 ‘농번기의 시작’이다.

나는 농부의 딸로 태어나, 봄이면 부모님의 일손을 돕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가족은 부모님과 어린 세 아이뿐이었고, 우리에겐 선택이란 없었다.

그래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들 수 있을 때부터 우리는 ‘일꾼’이 되어야 했다.

벚꽃이 필 즈음이면 볍씨를 뿌리고, 흙을 고르고, 물을 대는 일로 분주했다.

나는 호스를 잡았고, 수도꼭지를 여닫았다.

얼굴은 늘 붉게 달아오르고, 봄이 지나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봄은 이상하게도 찬란했다.

일을 하다 보면 도시에서 온 친척들이 나들이를 오곤 했고, 그들의 웃음은 일하던 내게는 거리감으로 다가왔다.그럴 때마다 검게 탄 내 얼굴이 부끄럽게 느껴졌고, 봄은 점점 ‘어른스러운 현실’이 되어갔다.

그 후, 들판 옆에 커다란 골프장이 생겼다.

우리는 여전히 흙을 옮기며 일하고 있었지만, 그 옆에선 골프 카트를 타고 웃으며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벚꽃과 푸른 잔디, 그리고 노동하는 나의 모습은 같은 계절 속의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봄, 벚꽃은 언제나 우울하고 멀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어서도 벚꽃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설레여 할때도,

나에겐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계절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벚꽃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벚꽃 아래에서 아이가 웃고, 벚꽃잎을 손바닥에 올려두고,

조금 커서는 흩날리는 꽃잎을 쫓아 뛰어다녔다.

나는 그 순간을 담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그 찬란한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그 순간 깨달았다.

어두운 기억도, 햇살 같은 새로운 기억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는 것을..

여기서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상징적 상호작용주의(Symbolic Interactionism)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사회적 경험을 통해 사물이나 사건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에게 벚꽃은 '가난', '노동', '수치심'이라는 상징이었지만,

아이와 함께한 시간은 벚꽃이라는 상징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는 경험이 되었다.


벚꽃은 더 이상 고된 시절의 상징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은 봄', '가족의 사랑', '새로운 시작'의 상징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힘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리적 회복력은,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어려움을 겪고도

삶을 다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어린 시절의 벚꽃이 주었던 상처와 거리감은,

이제는 아이와 함께 만든 따뜻한 경험을 통해 회복되고, 치유되고, 재해석된다.

더불어 고1의 '중간고사 시즌'이 되었다.

벚꽃의 꽃말이 또다시 바뀐 것이다.

나는 주말마다 아이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함께 걷고, 곁을 지킨다.


그렇게 쌓여가는 계절의 기억들이

나의 봄을, 나의 벚꽃을, 조금씩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벚꽃은 나에게 행복의 한 조각이 되었다.

벚꽃 시즌이 되면, 아이와 꼭 함께 찾는 장소가 생겼고,

아이의 나이만큼, 열심히 자란 만큼 그 길도 조금씩 달라졌다.


세 살이 열 살이 되고, 열 살이 열일곱이 된 지금,

우리가 함께 걷는 길은 더 깊고, 더 조용해졌지만 여전히 따뜻하다.

부모님은 여전히 그 시기에 논에서 얼굴이 그을리실 테지만,

나는 이제 아이들과 함께 다른 봄길을 걷고 있다.

그렇게 세대와 계절은 이어지면서도, 서로 다른 의미를 품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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