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외로웠던 아이는, 상담자가 되었습니다.
깔깔거리기를 참 잘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히히덕 웃으며 하루를 보내던 아이였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아이는 점점 풀이 죽어갔습니다.
학교까지는 30분을 걸어가야 했고, 거대한 덤프트럭이 지나가면
흙먼지가 눈을 덮쳐 눈물이 났습니다.
뱀이 차에 깔려 죽은 것을 밟고 놀라는 날은,
하루가 통째로 재수 없는 날처럼 느껴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기다리는 건 낯선 꼬부랑 할머니뿐.
엄마도, 아빠도, 동생들도 농사일로 멀리 떠나 있었고
그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그곳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안아주는 사람 없이,
“잘 있겠지”라는 말로만 살아야 했던 시간.
울어도 소용없다는 걸,
떼를 부리면 더 멀어진다는 걸
너무 이른 나이에 알아버린 아이는
조용히 웃는 법을 먼저 배웠습니다.
엄마는 돌아와서도 묻지 않았습니다.
“너는 첫째잖니. 동생들 잘 봐야지.”
감정은 사치였고,
말은 자주 삼켰습니다.
그렇게,
‘자기감정을 말하면 안 되는 아이’가
천천히 자라났습니다.
아버지가 분노를 터뜨릴 때,
엄마는 말했습니다.
“넌 성격이 좋으니, 가서 아버지 화를 좀 풀어드려.”
무서웠지만,
딸은 그렇게 했습니다.
“아버지,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그 말에 아버지는 웃었고,
딸은 안도했습니다.
그 아이는 자라
‘자신의 마음은 모른 채, 남의 마음만 잘 맞추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친구는 많았지만, 늘 외로웠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는 다시 그 시절의 아이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내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은 점점 바닥을 쳤습니다.
좋은 엄마이고 싶을수록, 나는 점점 불행해졌습니다.
처음엔 육아서를 잡았고, 그다음엔 심리책을 잡았습니다.
심리학을 통해 처음으로 내 감정의 뿌리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실 문 앞에서 만난 문장 하나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 있다.” — 칼 로저스
그 문장은, 끝이라 믿었던 관계에
작은 실마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다르기만 했던 남편과의 대화도
조금씩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책을 읽고,
상담을 받고,
나를 공부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외롭고 고단했던 그 아이는
이제 외로운 사람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엄마로서의 역할에 파묻혀 지내던 날들,
나를 잃어가던 순간들,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조용히,
그러나 깊게 들여다보는 일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다른 누군가의 '그때 그 시절'을 함께 걸어주는 상담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정의 시작을, 이 글에 담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