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써 마주한 내면아이
아이에게 화가 날 때마다 나는 묘한 죄책감과 질문 속을 서성인다.
정말 아이 때문에 화가 난 걸까.
아니면, 내 안에 아직 자라지 못한 그 아이 때문일까?
“나는 안 그랬는데, 왜 넌 그럴까.”
어느 날, 아이가 동생을 도와주지 않고
자기 일도 미루는 모습을 보았을 때,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화를 냈다.
그리고 그 말이 툭 튀어나왔다.
“너는 언니잖아. 책임감이 있어야지.”
그 말이 나올 때의 표정,내 목소리에 실린 힘.
그건 단순한 훈육이 아니라,무언가 오래 억눌린 감정의 분출 같았다.
어릴 적 나는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였다.
공부도, 진로도, 심지어 감정도 스스로 다뤘다.
엄마는 늘 아버지와 남동생을 바라봤다.
그리고, 농삿일로 바쁠때는 동생들을 맡기고 나갔다.
나는 “언니니까” 동생을 챙기는 게 당연했다.
밥을 차리고, 울면 달래주고, 숙제까지 봐주던 나.
나는 그렇게 살아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내 아이가 나와는 다르게,
가볍고 자유롭게 행동할 때면
불쑥, 내 안에서 불같은 감정이 솟아오른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른 질문.
정말 아이 때문에 화가 난 걸까?
아니, 어쩌면 그건
과거의 나 때문은 아닐까?
상담실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다.
“저는 어릴 때 정말 잘했어요. 동생도 챙기고, 공부도 스스로 하고…
그런데 우리 아이는 너무 무책임해요. 그 모습이 너무 싫어요.”
그 감정을 따라가 보면
분노보다는 서운함이 먼저 나온다.
‘나는 그렇게 애썼는데… 왜 너는 안 해?’
아이는 그냥 자기 방식대로 살아갈 뿐인데,
그 모습이 마치, 내 어린 시절을 외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걸 "투사적 동일시"라고 부른다.
내가 감추거나 억눌렀던 감정을 아이에게 무의식적으로 투사하는 것.
그리고 아이가 마치 ‘그때의 나처럼’ 행동해주길 바라는 것.
아이가 나와 다르게 행동할 때, 그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의 과거가 소리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살았지만,까지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는 그게 방식이었지만,아이에게는 또 다른 길이 있다.
아이의 삶은, 내 과거를 복원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본다.
“그래, 네가 참 많이 애썼구나.”
“이제는 그 역할, 내려놔도 괜찮아.”
그 말은 아이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안의 어린 나에게 건네는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내 감정을 재발견하는 일이고
나의 내면아이를 다시 품는 여정이다.
아이를 통해,
나는 다시 나를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