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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Oct 20. 2020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싫어, 아무거나 해보기(上)


평소 주말에 최대한 자는 편이다. 일부러 커튼도 걷어 놓고 볕을 쬐면서 주말의 기분을 만끽한다. 일찍 일어난 남편이 아침을 먹고 빨래를 돌리는 소리에 중간중간 깨면서도 선잠자는 게 행복했다. 일어나는 시간은 빠르면 10시, 늦으면 정오를 넘기는 날도 허다했다. 그 정도 자고 일어나면 일어남과 동시에 하루가 끝나감을 느끼곤 했다.


비장한 각오로 맞이한 토요일, 아침 8시에 눈이 떠졌다. 대충 씻고 책상 앞에 앉았다. 주중에 택배로 받자마자 시작한 프랑스 자수 용품들이 늘어져있었다. 이틀 만에 바느질이 익숙해져서 잠이 덜 깬 상태였는데도 손이 알아서 바늘에 실을 꿰었다. 9시쯤 되었나 배가 고파졌다.



일부러 주말 아침엔 예쁘게 차려먹으려 한다. 남편이 사다 놓은 과일이 많아서 흡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주말을 위해 준비한 디저트가 있지. 초코 팔미까레와 콜드브루를 준비해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블루투스로 광고 없는 아이유 노래 모음도 틀었다. 책상 옆에 창문이 있어서 햇빛도 적당하고 바람도 선선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아주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팔이 아파지면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바느질을 했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2시쯤까지 반복했다. 오후가 되면서 바느질이 고되게 느껴졌는데 그만할 수 없었다. 다음에 이어서 할 일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밥 먹을 때까지 계속하기로 했다.



자극적이고 일탈의 기분을 낼 수 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다. 컵라면, 무알콜 맥주, 안주거리를 하나 사 왔다. 탄산음료가 먹고 싶은데 단맛도 싫고 맹맛도 싫어서 어쩌다 보니 무알콜 맥주를 사게 되었지만 만족스러웠다. 느지막이 점심을 먹고 또 할 일이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았다. 자수를 너무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은 '자수생'이라 이름을 붙여주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와 바느질을 할 때 마음이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주말이 끝나가는 느낌은 괴로워.

내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바느질이라도 하자.

이제 힘든데 그만하고 싶은데.

안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괴로워질 거야.

으잌, 이것도 괴로워.


한계에 치달았을 때, 놀면 뭐하니가 시작했다. 재미있는 티비가 잠시라도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즐겁지 못했다. 우울할 때를 대비해서 비상약처럼 맛있는 음식을 사다 놓았는데 현명한 선택이었다. 하루 만에 거의 먹어버려서 당황했지만. 마르게리따 피자를 오븐에 데워서 루꼴라를 잔뜩 올려 먹었다. 먹는 즐거움이 잠시 위로해주는 사이, 바느질에 지쳤던 나는 계획에 없이 잠들어버렸다.

일요일은 잘 보낼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싫어, 아무거나 해보기(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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