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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Nov 04. 2020

아등바등, 좀 더 열심히 살아보기로

박지선 씨 편히 쉬시길


남편과 싸우면 세상이 멈춘다. 남편이 나의 감정을 받아주지 않으면 나는 세상 모든 것에서 감정을 거두고 그저 숨 쉬는 생물체가 된다. 분노가 극으로 치닫는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통제 방법은 플러그를 뽑아버리는 것뿐이다. 플러그를 뽑는 동시에 분노도 사라지지만 삶의 의지도 사라진다. 다행인 건지 죽음의 의지도 사라져서 나는 그저 숨 쉬는 생물체가 된다.


지난 2주간 플러그를 뽑았다 꽂았다를 반복했다. 죽음 의지가 없어도 이러다 몸과 마음이 지쳐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날, 박지선 씨가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이들 누구 하나 떠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 모두 짐작도 못할 만큼 밝았던 모습, 그리고 죽음을 결정했을 어두운 마음 간의 간극. 그게 너무 먹먹하다. 이유가 무엇이든 세상에 남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녀는 떠났다. 반대로 나는 남아있다.


삶의 대척점에 선 그녀를 보며 나를 본다. 감사한 날보다 버거운 날이 더 많지만 여기 남아있다. 스스로 무기력에서 벗어나려 아등바등한다. 플러그를 뽑든 꽂든 다 살아보자고 하는 짓이다. 아직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게 있나 보다. 이왕 애쓰는 거 좀 더 해보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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