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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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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25. 2024

평범한 저녁 풍경

 오랜만에 밥을 했다. 주걱이 보이지 않아 수저통에서 숟가락을 하나 꺼내왔다. 밥솥을 여니 저번엔 생쌀과 다를 것 없더니 이번엔 떡과 다를 것 없었다, 그릇에 떨어지는 양보다 숟가락에 붙어 있는 양이 더 많았다. 분명 밥솥 선에 맞춰 물 조절을 했는데 왜 자기 멋대로일까. 먹을 만은 하게는 해줘야지 중간이 없다. 가끔 쓴다고 심통이라도 부리는 걸까. 


 냉동실에서 닭가슴살 소시지를 꺼냈다. 성에가 끼어 있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걸까. 소시지는 대답이 없다. 혼자 오래 지내다 보면 혼잣말을 자주 한다던데 나는 사물들에게 말을 자주 걸게 되었다. 가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소시지를 전자레인지에 넣어두고 타이머를 맞췄다. 작동될까. 작동되었다. 언제부턴가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작동되거나 되지 않는다. 바꿔야 하나 싶을 때마다 작동되는 것이 미워하기 힘들어 그냥 뒀다.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확성기 소리도 연달아 들렸다. 뭉개져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알 것 같았다. 길 좀 비켜달라는 말이겠지. 베란다에 나가 창문을 열었다. 소방차 한 대가 언덕 끝에 멈춰서 있었다. 파자마 차림으로 나와있는 아주머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펑, 소시지 포장지에 구멍 뚫리는 소리가 들렸다. 끝을 살짝 뜯어주고 넣어야 하는데 매번 까먹는다. 소시지가 터지는 정도의 사고였으면 좋겠다. 소방대원들이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창을 닫았다. 


 옆구리 터진 소세지과 떡밥을 먹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에 놓여 있는 것들이 모두 나를 닮아 제멋대로다. 분명 저것들은 버리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너무 대충 놓여 있다. 누군가 나다운 것에 대해 물어본다면 저것들을 묘사하도록 해야겠다. 맨날 먹던 라면이 아니라 오랜만에 닭가슴살과 떡밥을 먹으니 건강해진 기분이다. 방금 바닥에 놓여 있는 소시지 포장지에서 유통기한이 작년인 것을 봤지만 괜찮다. 맛이 변하지 않았으니 건강해진 기분도 변하지 않는다. 


 한적한 저녁이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사방에 대고 아무 말이나 해본다. 대답이 없다. 정적은 때때로 대답이 된다. 정적에 반응하기도 전에 화면에선 이미 저녁 풍경이 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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