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매영 Jun 27. 2024

삥을 뜯겨봤다.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백혈병 투병 중에도 다음 항암을 기다리며 내일로 여행을 할 정도로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타지에 혼자 가게 되어도 약속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숙소에서 나오지 나오지 않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된 걸까. 목숨을 걸고서라도 여행을 좋아하던 사람이 왜 그렇게 변하게 된 걸까. 나는 여행을 다닐 때 명소보다 온갖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온갖 골목에서 사람 사는 냄새 맡는 것을 좋아했다. 


 기억났다. 삥을 뜯겨서부터였다. 부산에서였다. 기분 좋게 아침에 국밥을 먹고 사랑하는 골목에서 산책을 하다 삥을 뜯겼다. 당시에는 삥을 뜯기는지도 몰랐다. 중년의 남자가 술집에서 돈을 다 뜯겨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차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의 집이 대전이라고 했다. 대전에 가면 바로 입금해 준다고 했다. 안타까웠다. 나는 그와 여러 이야기를 했다. 내가 투병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국밥이 좋아 부산에 왔다는 것부터 시작해 그가 대전에서 어떤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는 현금이 없어 통장에서 삼만 원을 찾아 그에게 쥐어주었다. 그는 내 연락처를 받아갔다. 연신 고맙다며 다음 날 꼭 연락해서 갚겠다고 했었다. 뿌듯했다.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고 큰 소리로 웃었다. 멍청아. 그 사람 연락처는 받았냐. 못 받았다고 하니까 더 크게 웃었다. 친구는 그 사람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 것이라 했다. 나는 아니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속 깊은 이야기를 했다고 그는 분명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불현듯 그가 문신을 뽐내려는 듯 소매를 자꾸 걷어 올렸던 것이 생각났다. 불안해졌다.


 며칠을 기다려도 그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분했다. 그 사람에게도 분했는데 그 사람을 믿은 내게 더 분했다. 그래서 혼자 여행을 가지 않게 되었다. 한 사람에게 분한 것이 혼자 여행을 가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탓이 필요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쌓인 분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 사람을 찾을 방법이 없으니 그 장소가 그 사람이 되어버렸다. 한 장소가 그 사람이 되어버리니 모든 장소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분함을 잊어 보겠다는 핑계로 베트남 한 달 살기를 계획했었는데 코로나 덕분에 모두 취소했었다. 지금은 시간도 돈도 없다. 그에 대한 분함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