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한다고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야
뒹구는 낙엽 밟으며 아가 생각났어
결국 내가 버린, 아니 내가 죽인 생명
이십여 년 전 태어났을 아가
불혹을 넘겨 가진 아가
두 자녀 낳아 길렀지만 의아했어
으스스 떨며 이불 덮다가 혹시나 했지
설마 아니겠지 했어
노산이라 산모 아가 모두 위험하다는 의사 말에
저항 없이 순종했어 죄짓는 줄 알면서 죄인을 자처하고
수술 뒤 남편과 오열했어
아이가 떠나는 것도 모른 채 아이의 흔적도 찾지 못한 채
여러 날 서글픔이 마음에 서걱거렸지
울다가 외면하다가 사죄하다가 쓸쓸한 마음으로 무작정 걷다가
어느 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어버렸어
덮어놓은 낙엽이 눈앞에서 휘날렸어
한동안 덮어놓은 거기에 아가가 있었어
살았다면 스물하나일 셋째 아이가 거기에 있었어
아가야 스물한 살 너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찬 바람이 정신을 후려쳤어
죄를 지었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진 거야, 살인자였어
아가 미안해, 나를 용서하지 마, 절대 용서하지 마
삼 년 전 떠난 반려견 묻은 자리에 며칠 전 노란 산국이 폈어
반려견 떠나보내고 금 가고 깨진 마음 바라보다 아가 생각났지
아가가 떠난 날, 몇 개의 금이 갔을까, 몇 조각으로 깨졌을까
금 가고 깨진 마음 붙이지 못해, 이대로 사는 게 벌일까
낙엽이 날아가는데 아가도 날아가고 있었어
반려견 묻은 자리로 낙엽 몇 장이 날아왔어
반짝거리는 노란 꽃이 애기똥풀은 아냐
아가 기저귀 갈지 못하게 훼방 놓듯 날아온 낙엽에선 산국향 퍼지고
아가 똥 냄새가 이리도 향기로울 수 있을까
아가 똥 기저귀에서 초콜릿 냄새가 난다던 친구 말 떠올라
아가 정수리 냄새도 살 냄새도 똥 냄새도 엄마로서 존재할 때 맡을 수 있지
아가를 지워버린 어미는 내년 봄 애기똥풀 앞에 설 수 있을까
손등에 짜놓은 노란 액체에서 아가 똥 냄새 맡을 수 있을까
내년 봄에도 바스락 거리는 낙엽 날아오면 다시 덮어버릴까
금 가고 깨진 거 다시 붙일 수 없어도 덮지는 말아야 해
살점이 찢기는 고통으로 사라졌을 아가의 고통 고스란히 되받아야 해
참회한다고 죄가 없어지는 건 결코 아니야
무덤 갈 때까지 참회해도 죄가 없어지는 건 결코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