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고...
우리와 함께 살기로 한 붙임성 있는 늑대들에게 감사했다. 너희들이 있어서 15년 1개월간 고맙고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떠난 반려견 치리오와도 만날 수 있었구나. 떠난 지 3년이 넘었으나 생각날 때마다 여전히 가슴이 먹먹하고 찡해져 오는 것은 순전 치리오의 다정한 눈빛 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다정함의 원천이었던 반려견 치리오를 추억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한 것이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라면 나는 과연 친화력 있는 사람인가,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 타인과 협력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혼자 세계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내게 많은 질문들을 던지게 했다.
개들 역시 스스로 가축화해서 다정한 반려견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거라고 믿고 싶다. 아주 오래전 관람한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이란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올랐다. 때론 사람 친구보다 더 진한 우정을 동물들과 나눌 수 있지 않은가.
암컷과 친하게 지내는 수컷 보노보가 침팬지의 수컷 우두머리보다도 더 많은 후손을 얻는 것은 다정한 사회의 진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 역시 가정적이며 의사소통이 유연하고 공감 능력 있는 다정한 남성을 선호한다.
인간이 그러하듯 모든 생명체는 다정함과 잔학성이 공존한다. 하지만 보노보는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 탁월한 지능과 지성을 뽐내는 인간이 하지 못하는 것을 보노보는 이미 성취한 셈이다. 보노보와 함께 초록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심을 담아 다정함을 학습해야 한다.
아이젠하워의 손녀와 흐루쇼프의 아들의 예처럼 다정한 말 한마디가 적을 친구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내 삶은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나, 그들에게 다정한 친구였는가.
편협한 다정함이 아닌 확장된 다정함이 진화 게임에서 유리하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이 책을 추천한 Y 님의 밝고 다정한 표정이 떠올랐다. Y 님의 추천이 아니었으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 아무튼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부디 다정하게 느껴지길).
내게 잊을 수 없었던 다정한 말 한마디가 있다. 둘째 아이 출산 후 심한 산후우울증으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웠던 한 마디,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그때 남편의 하얀 공막 속 눈동자는 진정 나를 염려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은 이미 협력적 의사소통을 실천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게 너무도 절실했던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다정한 말 한마디는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고 다시 힘내고 추스르게 해서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게 돕는다. 오늘도 누군가와 소통할 것이다. 다정한 말 한마디가 어떤 이들의 마음에 잘 전달되길 바란다.
<딸에 대하여> 속 '레인', <프렌치 수프> 속 '도댕', <나의 올드 오크> 속 '티제이'를 보면서 책 속 내용을 떠올렸다. 다정한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 세 편을 추천한다. 브라이언 헤어의『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