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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Nov 20. 2024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지난해 11월 중순쯤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나흘 내내 아침저녁으로 카를교 주변을 산책했다. 영화 속 테레사가 불안정한 표정으로 오리 떼를 내려다보다 볼타강에 몸을 던지려고 했던 지점쯤에서 발길을 멈췄다. 그곳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생각했다. 2000년, 2007년, 2009년, 2023년 네 차례 프라하를 여행하며 카를교를 거닐 때면 이 도시야말로 연인을 위한 도시라고 생각했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곁을 지나가던 한 커플은 콧등을 비비다가 갑자기 격렬한 키스를 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아, 프라하는 연인들의 도시야. 무거움의 상징인 토마스와 테레사가 그랬고, 가벼움의 상징인 사비나가 그랬듯이.     


  인간 존재의 양면성과 모순, 불가측성, 아이러니를 특유의 해학과 지성, 반어와 철학으로 풀어내는 게 장기인 밀란 쿤데라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책을 읽는 내내 여행 중 만났던 프라하의 여름과 가을, 겨울 풍경과 함께 바츨라프 광장이 떠올랐다. 어두운 그늘을 벗고 예술적인 본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도시 프라하! 과거 공산정권의 어두운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도시 전체의 느낌이 미술관 같은 풍경으로 다가왔던 도시, 다양한 문화만큼이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 프라하. 숙소 지척에 있던 바츨라프 광장을 수없이 오갔다. 무겁게 혹은 가볍게 산책했던 시간을 반추하며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무거운 것은 부정적이고, 가벼운 것은 긍정적인 것일까? 존재란 태어나면서부터 맺어지는 관계로 무거워진다. 무거움이란 어쩌면 존재의 숙명. 소설의 주인공들은 존재의 숙명에서 벗어나 가벼움을 얻고자 하지만 끊임없이 관계 맺으며 무거움을 이어가겠지. 그들이 그렇게도 증오했던 존재의 무거움은 오히려 그들이 그렇게도 갈망했던 인간관계였으니까.     


  진정한 사랑이란 결국 존재의 무거움을 기꺼이 인내하는 과정이 아닐까? ‘사랑한다는 것은 힘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한 프란츠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진리 속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거짓말하지 않기, 본심을 숨기지 않기.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 것처럼 단순한 것이지만 그렇게 살기가 또 쉽지 않다는 게 무거움으로 다가왔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순간에, 결정도 한 번밖에 내릴 수 없다. 잘못된 결정이라도 되풀이할 수 없다. 우리 인생의 유한성, 그것의 '가벼움'과 '참을 수 없음'을 이 책은 서술하고 있다. 첫 독서는 그 난해함에 참을 수 없는 무거움으로 힘들었으나 밀란 쿤데라의 글쓰기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고, 재독에서는 밑줄 쳐가며 여러 번 책장을 덮고 나 자신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사유했다. 토마스가 무거움의 상징인 테레사와 가벼움의 상징인 사비나 사이에서 균형을 찾듯이 나 역시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균형감을 찾고자 했다.     

  우리를 무겁게 혹은 가볍게 하는 것들은 주변의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정서와 생각 때문이다. 내 안의 목소리에 고요하게 귀 기울일 때다. 존재의 무거움과 존재의 가벼움을 나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가 되고 싶다. 주체일 때 '자기가 한 짓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를 용서'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고 나면 새털처럼 가벼워질 수도 있을 테니까.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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