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시즘, 아니 에르노의 <탐닉>을 읽고...
오토 픽션의 대표적인 작가, 아니 에르노!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 작가라니 궁금했다. '자기 자신의 인류학자가 되는 일' 즉 자기 경험을 다루되 조금도 연민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냉혹한 관찰자가 되는 일, 노벨 위원회가 '임상적 냉혹함'이라고 평했던 그녀의 이야기 방식에 관심이 갔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재작년 2022년 BIFF에서 관람한 자전적 다큐멘터리 <슈퍼 에이트 시절>이란 작품이었다. 이후 <세월>과 <사건(‘레벤느망’으로 영화화)> <남자의 자리> <한 여자> <다른 딸> <단순한 열정> <빈 옷장> <사진의 용도>까지 읽어 나갔다. <탐닉>이 소설이라면 시 버전으로 먼저 출간한 것이 <단순한 열정>이며, 이는 2023년에 영화화되어 개봉했다.
<탐닉> 이 작품은 수위가 엄청나게 세서 낯선 충격을 경험했다. 키가 크고 하얀 피부의 35세 러시아인 유부남은 이기적이고 비싼 선물을 당연한 듯 받는다. 48세의 여자는 그가 원하는 모든 육체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플라토닉 러브를 한다는 이들에게 그녀는 시비를 걸듯 조르주 바티유의 말을 인용했다. "에로티시즘은 죽음 속까지 파고드는 생"이라고. 결국 아니는 '솔직히 너희는 섹스하고 싶은 거야'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삶의 허무에서 자신을 구하는 방법은 섹스와 글쓰기였다던 아니 에르노. '욕망'에 충실한 자신을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누구나 욕망을 품지만 아무나 그것을 드러내진 않으니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너무나 아니다운 40쪽의 표현, "이제 나는 사랑 속에서 진실을 찾지 않는다. 관계의 완벽성. 아름다움, 쾌락을 찾을 뿐이다."
쾌락에 대한 행복감이 점점 덜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상대의 몸을 배우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아니는 비가 오는 날이면 가을 버섯처럼 습하고 강한 남자의 냄새를 맡고 싶은 욕망을 감추지 않았다. 그녀는 단순한 생물로서 언제나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을 나눴다.
만났던 모든 남자는 매번 다른 깨달음을 위한 수단이었다고 말했던 아니는 섹스에 대해서 단지 성적인 필요성보다는 지식을 향한 욕망에 있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무엇을 알기 위해서인지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니. 그녀의 표현처럼 욕망과 에로티시즘에 굶주린 자신이 세상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사랑과 글쓰기를 통해서였다고 했으니 결국 지식을 향한 욕망은 글쓰기로 표출된 것이 아닐까.
자신이 언니의 죽음에 종속되어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던 아니는 <다른 딸>에서 언니에 대해, <남자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반추했고, <한 여자>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피력했다. <한 여자>를 쓸 때 완벽한 글쓰기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던 아니는 완벽한 사랑을 원했다. 꿈에서조차 러시아어로 말하고 러시아어로 생각했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글은 하나의 장소이고, 그 안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말을 걸고 움직이며 누군가를 만난다."
지금 우리는 그녀가 펼쳐놓은 장에서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그녀의 말에 응답하고 있는 셈이다.
내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아 둔 문장이 담겨 있는 <한 여자> 속, 아니 어머니의 표현이다. 현재의 아니에게,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