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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용도 머그컵

by 물들래

2005년 12월이었을 거야

인사동 갤러리 도예전시를 둘러보던 중

도자기 머그컵 앞에 시선이 머물렀어

살림살이 늘이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한참 망설이다 두 눈 질끈 감았어

큰맘 먹고 포장해서 고이 데려왔지


머그컵은 생각보다 컸어

금세 분쇄한 원두커피를 내려 담기에도

인스턴트커피를 타 먹기에도

녹차를 우려 마시기에도

야채수프를 담아 먹기에도

시리얼을 듬뿍 넣어 먹기에도

보글보글 끓은 라면을 담아 먹기에도

맛나게 끓인 떡국을 담아기에도

뭇국이나 콩나물국을 담기에도

떡볶이나 어묵을 담아 먹기에도

샐러드드레싱을 만들 때도

콩나물 밥 양념장 그릇으로도

비스킷이나 스낵류를 담아 먹기에도

아이스크림을 덜어 먹기에도

안성맞춤한 머그컵이었어


커피 내려마시려고 구입했지만

머그컵은 며칠 만에 다양한 용도로 쓰이기 시작했어


머그컵을 보면서 문득

나도 얘 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떤 고정관념이나 틀 속에 갇힌 답답한 인물이 아니라

자유자재로 변신하고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지는 모습으로 말이야


커피잔에 양념장, 라면, 뭇국, 수프를 담아 먹다니

예전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던 일이지

커피잔에 양념장이나 국을 담는 건 좀 너무하잖아

아니, 생각의 전환이 필요해

다행히 질 좋은 머그잔이라 세척하면 냄새가 배지 않고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는 머그컵을 구입한 안목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


19년을 사용해도 변함없는 다용도 머그컵에 오늘도 보이차를 가득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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