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세상
보넷은 진짜 가짜 사이 중짜 화가로 예술계에 파문을 던진 채
장롱 속 깊은 창고 작업실에서 세잔을, 고흐를 넘어서 조각까지 진품으로 위장하지
그러나 어쩐다? 그림이야 위조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조각은 사용했던 재질과 기술적 검증으로 진위여부를 가리는데 말이야
보넷은 타고난 예술가였음에도 위조하는데서 오는 전율을 습관처럼 즐긴다
경매시장에서의 고가 경매보다 가짜를 보고도 그걸 진짜라고 믿고
심미안을 자랑하는 인간들의 위선을 지켜보는 것에 흥미를 느꼈던 걸 거야
이미 가질 만큼 가진 부자인 그에게 돈은 문제가 아니야, 가진 자들의 위선을 즐기는 거야
슬픈 건 말이야, 그걸 즐길 수 있는 자는 이미 가질 만큼 가진 자라야 가능하다는 거지
영화 제목이 멋쟁이 도둑이라네
일본 영화 포스터 제목은 세련된 도둑이야
또 다른 제목은 백만 달러의 사랑
원제가 궁금할 정도로 마음에 차지 않는 제목이지
백만 달러를 훔치는 방법이라네
제목만 보고는 관람 욕구를 자극하지 않았어
시나 소설 제목과는 다른 걸까, 쉽게 붙인 제목 같았으니까
주연이 오드리 헵번과 피터 스툴이라서 관심이 갔어
헵번스타일을 애정하는 관객으로
헵번 출연 영화는 모두 관람하고 싶거든
헵번은 영화에서 위조화가 보넷의 딸로 분했어
무슨 영화든 헵번의 헤어와 패션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지
보넷이 기증한 비너스 조각상이 박물관에 전시됐지
깊고 넓은 안목은 지니지 못했어도 진품의 모조품 같은 위작 앞에서
감탄하는 관람객들 모습을 보며 실소가 터졌어
미술관에서는 가짜 품위라도 보여야 하는 걸까
자신도 예술품 앞에서 인텔리임을 과시하며 감상하는 부류에 끼고 싶은 걸까
하나같이 눈빛을 반짝이며 감동하고 다물지 못한 입으로 감탄해야 하는 걸까
인상 쓰고 있는 세잔이 보인다
지베르니 지층을 두드리는 모네를 느낀다
예술이 할 말을 잃고 있다
진품을 마주하는 순간들은 관객마다 다르다
화집을 들추는 순간에도 관객은 감동할 수 있다
진짜는 진짜일까
가짜가 진짜 가짜인 걸까
진짜는 누가 규명하는가
가짜라고 누가 판명하는가
그걸 그대로 믿을 수 있는가
니콜(오드리 헵번)에게 청혼한 더모트(피터 오툴)가
가짜 예술가 보넷(오드리 헵번 父)에게 새사람으로 살아 주길 부탁하자 수락하지
인생이 그렇듯 손 털고 새사람 되는 게 쉽진 않지
고흐 작품을 진짜라고 믿으며 구입하길 원하는 고객을 반기는 보넷
니콜과 더모트의 표정으로 미루어 생각하건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
남의 인생을 들여다봐야 인생을 구할 수 있다잖아
그게 관객 모두에게 걸린 저주 아닐까, 그 저주 아래 있을 원하는 관객이 나야
먼저 고흐가 오베르 쉬아즈 무덤에서 비틀거리며 나올 것 같았어
환생한 고흐를 만나기 위해 파리행 티켓을 예약해야 할까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봉인된 시간에 보면
관객은 보통 잃어버린 시간, 놓쳐버린 시간
아직 성취하지 못한 시간 때문에 영화관에 간다지 않는가
오늘도 나는 그 시간을 들여다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향한다
바보가 아닌 나는 알지, 영화가 인생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을
스크린에 빠져들다가 영화관을 나와서는 직접 몸으로 부딪쳐보기로 하지
비인 듯 눈인 듯 내리는 어두운 거리에서 인생의 문들을 하나씩 열며 해답을 찾아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오드리 헵번 출연 영화, <멋쟁이 도둑 - 백만 달러의 사랑> 관람 뒤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