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의 향수길 위에서

옥천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 다음날 아침 지용문학공원을 둘러보고...

by 물들래

해 질 녘, 스산하고 쓸쓸했어요

지용 님, 제 마음이 가난했나 봐요

석양이 내려앉고 어스름 땅거미도 가라앉고

서걱거리는 슬픔을 실개천에 뿌렸어요


동네 어르신 뻥튀기 두 자루 사서 어슬렁 걷는 길 위로

그대가 차마 잊지 못한 고향의 따가운 햇살이 바닥에 떨어졌어요

별것도 아닌 생각에 빠져 삐끗한 순간 발목 접질려서 당황했어요

그 사이로 사계절 바라보았을 그대의 실개천이 들려준 나긋한 속삭임에 귀 기울였죠

암홍빛 노을이 서산 뒤로 공손하게 내려앉은 풍경을 저 또한 잊지 못할 겁니다


어젯밤 지용 생가 가까이서 잠들며 옥천 별 만날 생각에 마음이 어수선했죠

서리 까마귀도 석근 별도, 초라한 지붕과 흐릿한 불빛도

그대가 꿈에도 잊지 못했던 고향 길은 모두 향수길로 변한 채 도란거렸고요

이동원과 박인수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 길 사이에서 먹먹한 마음 쓸어내렸죠


흙에서 자란 지용 마음, 파아란 하늘빛 그리워하는 제 마음과 겹쳤고요

얼룩빼기 황소, 게으른 울음소리 내며 피리 부는 목동 업고 생가 앞을 어슬렁거렸죠

어두워질수록 해설피 향수에 젖어들었어요, 눈시울 뜨뜻해졌고요

또로록 흐르는 눈물 그대로 내버려 뒀습니다, 실개천이 다시 휘돌아 나갈 때까지요


이른 아침, 지용 님의 발걸음 닿았을 산책길 고요히 걸었어요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지용문학공원에 올랐어요

오르면서 시비에 새겨진 시어 하나하나 곱씹었죠

백석, 이상, 영랑, 목월, 지훈, 두진, 동주 반가운 이름 보며 울컥했죠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지용 님의 고향은 다정한 어머니 품 같았어요

시가 햇살에 반짝거렸고요, 코끝엔 벌써 고향의 냄새가 어른거렸지요

향수가 이리도 달콤할 수 있다니요, 금빛 게으름 마냥 부려도 되는 하루라니요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가만히 눈을 뜹니다, 변함없이 향수가 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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