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평사리에서

박경리의 토지 속 인물을 생각하다

by 물들래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사랑채에 오르니 너른 공간이 온전히 내 차지

대자로 드러누워 토지 속 인물 하나 둘 떠올려보노라니 어느새 해 질 녘

휑한 안채 대청에서 윤 씨 부인 시선으로 푸르른 평사리 그윽하게 내려다보니

섬진강 마주한 봉순의 뒤태가 눈물겹고 봉순 향한 주갑의 상사병은 애처롭고 쓸쓸해

엄마 닮아 곱디고운 양현의 삶이 헛헛할 무렵 영광의 색소폰연주가 유독 구슬프다

귀녀 얼굴에 침 뱉은 어린 서희의 맹랑함은 도망간 어미 별당아씨에 대한 분풀이일까

박경리문학관 인물화 속 귀녀가 너무 고와서 사무치게 가슴 아프고 강포수의 순정에 눈물겹다

별당 연못 주변 걷노라니 별당아씨의 억눌린 감정과 꼭꼭 감춘 슬픔이 별당 곳곳에서 느껴진다.


길상의 도솔암 관음탱화 섬진강에 펼쳐지고, 인실 향한 오가타의 한결같은 사랑 어찌할까

홍이가 그랬지 평사리는 아버지 삶의 터전이라고 용이네 마당 푸지게 핀 접시꽃을 바라본다

용이네 툇마루에 앉은 용이 홍이 상의 삼대 모습 그려보니 우리네 인생 무상하기 그지없네

1895년 추석으로 시작된 토지 대장정에 동참하노라니 모든 시공 속 인물들이 앞서 걸어가더라

청설모 앞에서 서희가 잡히지 않는 안개 같은 세월 사유하며 삶에 쉼표를 찍는 기분이라니

그럼에도 역사는 멈춤 없이 흘렀고, 1945년 광복의 순간 토지 20권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 남은 건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 삶의 이유이고 독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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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7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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