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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May 01. 2023

마우리치오 카텔란 展

지금 여기를 리얼하게 반영한 충격적인 전시

현실을 리얼하게 반영한 전시, 충격 뒤에 따라오는 건 그래 이게 현실이잖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전시장을 나선 후에도 계속 따라다니는 잔상은 작품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현재 모습이더라,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힘이 있더라.


많은 이들이 관람하고 작품에 대해 토론해 보면 좋겠다. 작가의 의도도 전시의 주제처럼 '우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관람객들이 소통하고 토론해 나가길 바랄 것이다. 그게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38점의 작품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말을 건네온다. 아프게, 잔인하게, 소름 돋게, 거부하고 싶게, 마주하고 싶지 않게. 하지만 돌아서면 계속 생각나게 하는 작품들이다.


전시는 무료이나 예약이 쉽지는 않다. 팁을 드리자면 매일 오후 6시 정각에 리움 홈페이지에 입장(그전에 리움 회원가입 필수, 비회원 접수보다 빠르게 진행됨) 대기 순서를 기다리다가 접수한다. 정확히 2주 후에 관람 가능하다.



전시장 도처에서 관람객을 응시하는 수많은 카텔란을 만나볼 수 있다.

카텔란은 침입자, 경찰, 사제, 범죄자, 예술가, 소년을 능숙하게 연기하며 비관적이고 우울하며 냉소적인 카텔란판 인간희극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지금 여기 순간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은...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현실을 목도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 도발적인 익살꾼 카텔란은 채플린적 희극 장치를 적재적소에서 작동시키며 잔인한 삶에 대한 애잔한 공감을 끌어내고 있었다. 



관람 후 전시장을 빠져나오고 나서도 며칠간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니 그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카텔란의 어떤 작품이 떠오르면 다시 보이지 않지만 봐야 하는, 적어도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 떠올랐다. 미술관에서 전시품으로 만난 것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를 외면하려는 자들에게 경각심과 회의가 밀려오게 하전시임에 틀림없었다. 



작년 10월 하순 메모해 둔 詩를 정리하게 했던 전시이기도 했기에 그 詩를 이곳에 올려본다.


블랙샌드 레퀴엠 

         

검은 모래해변

뾰족한 말투 둥글게, 유리조각 둥글게,

달처럼 둥글게, 원처럼 둥글게, 삶도 둥글게,

젖어서 빛나는 모래해변 발자국도 둥글게,

둥근달에 침투한 예리한 서슬, 브람스 선율 타고 흐르네     


검은 모래해변

검게 덮친 검은 소식, 검은 참사, 

검은 하늘, 검은 태양, 검은 파문, 검은 깃털,

검은 연민, 검은 비참, 검은 악몽, 검은 마음,

검은 통속, 검은 장막, 검은 더미, 검은 주검     


검은 모래해변

검은 오선지에 눈물 음표, 추모 음표 그리고

4분 음표 그려 넣어도 통렬한 슬픔 마디마다 되돌이표

다시 또 그려보아도 검은 악몽 사라지지 않아

오선지 가득 검은 브람스 선율 그들의 넋 기릴 수 있을까     


검은 모래해변

브람스 음표 검은 파도 타고

아프게 검게 서늘하게 흐느끼는 4개의 엄숙한 노래

검은 분노 검게 잠재우고 검은 에너지 발끝에 몰리고

잿빛 曲으로 검은 直 처단할 수 있을까     


붉은 모래해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붉은 마음 하얀 주검

외면도, 부정도, 다툼도, 이게 진짜 현실인걸

적나라한 曲 노골적인 直 부딪히고 쇤베르크 선율 차오르네

4개의 엄숙한 노래와 정화된 밤이 엇갈리며 토해내는 애곡, 통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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