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들래 Dec 30. 2023

가장 진지한 고백

리빙: 어떤 인생

장욱진 회고전이 오픈된 지난가을 9월 하순에 다녀오고, 흰 눈이 군데군데 쌓여있던 12월 하순, 덕수궁미술관으로 다시 발걸음 했다. 저녁 고궁은 언제나 고즈넉한 풍경으로 나를 맞이하고... 만월이 뜬 석조전 앞 풍경은 유독 마음을 설레게 했다. 장욱진의 작품 속 달과, 지금 내 눈앞에 만월로 떠 있는 달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담긴 달과 그리고... 또 가족과 함께 만났던 보름달 추억까지... 반추하고 또다시 복기하면서... 수십 년 전, 혹은 몇 달 전의 추억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았던 시간, 내 어찌 잊으랴.

<밤과 노인> <안뜰> 1990년 세상을 뜨기 전 두 달 전인 10월에 그린 마지막 두 점의 유화 작품 앞에서 유독 긴 시간 서 있었다.  밤과 노인 작품 앞에서는 문득 작가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화가가 사랑했던... 그의 일부로 표현되던 집과 까치, 나무와 아이가 있고... 노인의 표정은 세속에 초탈한 듯 만사를 관조하는 모습으로 표현한 이 작품 앞에서 발길을 쉽게 떼기 어려웠다.  


"새벽 두 시건 세 시건 눈만 뜨면 나는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어떤 때는 샛별이 보일 때까지도 혼자서 쏘다닌다. 그건 서성이는 것도 아니며 더욱 무얼 찾는 것도 아니다. 새벽을 사랑하고 새벽을 느끼고 새벽이 곧 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새벽 산책으로부터 돌아와 화폭과 마주하면 거기 또 하나의 세계가 형성된다. 나는 그것을 추구하며 이룩해가는 것이다."   -- 장욱진


"철저하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철저하게  사물을 보는 눈, 철저한 작업, 철저한 자유…  나는 하루 네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는다. 그 이상은 낭비이기 때문이다. 남들과 유달리 새벽이 나의 생활세계이고 술이 휴식이고 내 몸을 위해 좋다고 하는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건만 나는 누구보다 건강하다. 뜻대로 산다는 것은 그대로 하늘의 뜻이기도 하단 말인가."  -- 장욱진

알싸하게 차가운 공기까지 고궁 산책에 안성맞춤이었다. 돌담길을 걸어 씨네큐브에서 <리빙: 어떤 인생> 을 관람하고 어두운 밤의 도로를 달려 집에 도착, 빌 나이처럼 놀이터 그네에 앉아 상념에 젖어들던 40년 룸메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하루였다. 영화 속 빌 나이가 살았던 날들의 달들도 떠올려본다. 우리는 몇 번의 달과 해와 별을 만나고 삶과 이별을 하게 될까. 매 순간 만나는 달과 해와 별들의 의미는 조금씩 달라질 테고. 기쁨과 슬픔의 색과 향도 시간과 함께 변화할 테니... 우리의 마음을 잘 간직하는 게 필요하다. 시시각각 변화더라도 진정으로 변해선 안 되는 것들을 꽉 부여잡을 수 있도록.

#리빙_어떤인생 #빌_나이 #시청공무원_윌리엄스 #가즈오_이시구로  #씨네큐브 #장욱진회고전 #가장_진지한_고백 #덕수궁미술관 #밤과노인 #안뜰 #새벽 #철저하게_산다는_것 #석조전_만월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책상 - 10월에는 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