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형식은 누가 만드나요
시에 이런 구식 표현은 안 써요 두레박으로 길어내고 싶은 정서가 있어서 두레박을 썼는데 왜 쓰면 안 되나요 시대에 맞지 않는 단어란 대체 어떤 건가요 안톤 체호프의 멜리호보 영지 우물가에서 두레박을 만났을 때의 감동 그때 오감을 깨우던 추억과 향기가 곧 시였다는 걸 아나요 단숨에 어린 날 우물가에 섰던 풍경이 뇌리에 닿으며 지나가고 두레박이 건져 준 고마운 시간을 젊은 시인이 알까요 시대에 맞는 단어를 찾아서 시를 써야 한다고요 옛 표현이라는 게 대체 뭔가요 젊은 시인에게 시를 배우겠다고 열심이었죠 모든 시 창작 수업이 그렇진 않겠지만 회의가 듭니다
시는 감각이죠 느껴지고 보이고 만져지듯 내 마음을 쓰고 싶어요 내 마음을 선명하게 오려내거나 뭉근하게 덮어놓고 들추어보고 싶어요 마음속 빛을 어루만지고 다듬으며 속삭이고 싶어요 그게 어렵죠 희미한 감각으로 여러 차례 덧칠할 때가 있는가 하면 불현듯 바람으로 느낌으로 와닿는 모든 감각을 들여다보고 싶어요 고르고 빼고 더하고 다시 덜어내면서 말이죠 고유의 진한 색 입히다가 조금씩 옅게 하면서요 그런 색을 쓰면 곤란하다고요 지금 내 감각이 선택한 색이고 시어죠 지금 필요로 하는 뉘앙스고 분위기죠 내 시어를 제어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 누구의 기운이나 감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지금 시의 분위기인 거죠
시의 형식은 누가 만드나요 형식의 기준은 누가 정하나요 애당초 시는 누구에게 배우는 게 아니었어요 무수한 시집 찾아 읽고 저마다 시 세계에 잠겨 보는 거죠 쏟아져 나오는 시의 말 제어할 수 없을 때 백지 앞에 한 자 한 자 채우고 빼고 다시 넣고 삭제하면서 나의 시 완성해 나갈 거예요 오늘 시 창작 수업 결강입니다
사진 출처: 성곡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