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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Mar 16. 2024

봄날의 대공원 [19/365]

2024년 3월 16일, 21:59

이번 주말은 온화한 날씨로 예보된 터라, 며칠 전부터 아들을 데리고 대공원에 다녀오기로 계획했다. 일어나자마자 바깥공기를 살폈는데, 다행히 예보대로 완연한 봄이었다. 먼지가 좀 있었지만, 겨우내 밖에서 양껏 뛰놀지 못한 아들에게도, 키즈카페에 완전히 질려버린 아빠에게도 먼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아들 먹일 볶음밥을 만들고, 김밥도 몇 줄 포장했다.


곱씹을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밤이라, 오늘은 기억나는 몇몇 장면들만 남겨둔다.


#1.

아들과의 대공원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첫 방문은 지난해 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만 해도 아들은 무섭고 두려운 감정이 덜 형성됐었는지, 고공 운행하는 리프트에 앉아 맞은편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손을 흔들다가, 가을바람에 노곤해졌는지 낮잠도 한 잠 주무셨다.


오늘의 아들은 리프트에 앉는 순간부터 어마어마아바아바를 나지막이 외치며 불안해했고, 아빠 무릎 위에 앉아 작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조막손으로 아빠 손등을 얼마나 꼭 누르고 있던지, 땀이 배일 정도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어여뻐서 아내와 나는 올라가는 내내 많이 웃었다.


#2.

리프트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좋았다. 공기는 선선한데 뺨에 닿는 볕은 따뜻했다. 어디서든 리프트를 탈 때마다 오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정확히 표현하기 어렵지만 ‘고요하지 않은 것들이 고요하게 보이는‘ 기분이다. 고공이라 지표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와중에, 리프트 자체의 소음도 거의 없어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다.


#3.

대공원은 역시 대공원이라, 일찍부터 사람이 정말 많았다. 워낙 조용한 동네에 살고있는터라, 가끔 이렇게 사람 많고, 노점 많은 곳에 오면 좀 들뜬 기분이다. 오늘에 딱 어울리는 3천 원짜리 솜사탕을 하나 사서 아들에게 쥐어줬다.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솜사탕을 뜯는 아들이 보기 좋았다. 봄날의 대공원을 선물한 것 같았다. 오늘을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4.

모인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부모가, 남편과 아내가, 아이들이 있었다. 매표소에 간 아내를 기다리는데, 검정색 멋쟁이 벙거지를 쓴 형아가 아들 주위를 빙글 돌았다. 형아는 연신 귀엽다고 외치며 아들에게 ‘넌 며짤이니’ 물었다. 아들은 늘 하던 대로 있는 손가락을 다 펼쳐보였다. 보통은 누나들이 하는 행동인지라, 유독 더 살가웠다


#5.

리프트를 타러 가는데, 뒤에서 아내를 있는 힘껏 비난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초지종은 모르겠으나, 끝도 없이 이어지는 힐난에, 들리는 내가 다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그의 거친 단어들은 그의 아내에게도 그의 아들에게도 버거웠을 것이다.


#6.

호랑이를 보러 가는 오르막길 한편에, 엄마와 딸이 보였다. 엄마는 주저앉아 쉬는 것 같았는데, 딸은 그런 엄마 어깨에 매달려 떼를 쓰는 와중인 것 같았다. 아버지의 직감으로 ‘위태롭다’는 생각을 했는데, 곧이어 엄마가 엉덩이 맴매를 단행했다. 아내에게 전해주니 ‘엄마들은 예민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7.

아들은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40분을 자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변신을 완료한 용사처럼 일어났다.


#8.

우리 셋은 저녁으로 안동 국시를 사 먹었다. 안동의 딸, 안동의 사위가 안동국시에 가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사실 뻔하다. ‘장모님 육전이 훨씬 맛있는데’, ‘김치죽이랑 배추 전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같은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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