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원인데 별 일을 다 합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러 온건데
요즘
쇼핑몰 홍보부스에서 학당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한국&일본 문화 행사'라는 명목으로 판매 부스가 차려진 쇼핑몰 행사장에서
학당 홍보 부스를 열어서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는 중이다.
지난 학기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기초 한국어 수업을 급하게 열었을때도 학당 근처에서 수업 홍보 전단지를 돌렸었다. 짧은 시간에 많이 알려야하니 SNS 홍보만을 하는데 아쉬움이 커서 주변에 있는 학교 학생들에게 직접 알려보자고 기획했었다. 발로 뛴 덕분인지, 다행히 급하게 진행했는데도 꽤 많은 학생이 등록했었다.
한국어 선생은 우리의 메인인 어학 수업 뿐만 아니라 문화 수업(모두들 이걸 당연히 여김), 문화 활동(돌잡이 체험이나 시장 놀이, 성인 학생 대상임), 요리 수업(떡볶이나 김밥 정도는 다들 만들고 계시죠?)은 물론이며 사정에 따라 행정 일이랑 학생의 신변에 관한 잡무까지 별 일을 다 한다는 것까진 알고 있었는데
내가 직접 전단지까지 나눠줄 줄은 몰랐다.
옛날 일본 워홀러 시절에 신주쿠 가부키쵸 초입에 있는 한국요리집에서 알바를 했었다.
나말고도 알바생이 한명 더 있었는데 가끔 손님이 끊기는 시간이 있었다.
어느날 사장님은 우리에게, 한가한 시간에는 가부키쵸에 나가서 전단지를 나눠주라고 했다.
어렸던 나는
유흥가에서 알바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는데
클럽 전단지를 나눠주는 호스트들과 함께 식당 전단지를 나눠줘야 한다는 게 너무너무너무너무 싫었다.
그래서 고용주에게 따졌다.
우리는 홀서빙이라고 해서 알바하러 온거지,
밖에 나가서 전단지를 뿌리는 일을 할 거였다면 지원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사장의 부인이 어이없어서 하면서 그럼 앞으로 우리의 시프트를 줄이겠다고 했다.
....?!
그러자 다른 알바생은 전단지를 넘겨 받고 밖으로 나갔고
나는 알바 시간을 줄이건 말건 끝까지 싫다고 하며 실내에서 버텼다.
사장의 부인은 나보고, 너 같은 알바는 처음이라고 했다.
...나도 이런 알바는 처음이었다.
왜냐면 나는 그때까지 식당 알바를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
자존심이 상했고
왠지 모를 억울함이 들었고
홀로 밖에 나가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는 다른 알바생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어서 눈물이 나왔다.
내가 알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운다고 생각했는지 사장 부인의 태도가 누그러졌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나가서 손님을 끌어올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쯤되면 내가 수긍하고 밖에 나갈 줄 알았던 것 같은데
나는
그만두면 그만뒀지 끝까지 전단지 뿌리는 것은 안하겠다며,
이럴거면 처음부터 업무 리스트를 알려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알바를 그만뒀다.
(이랬는데도 짤리지 않고 내가 직접 그만뒀던 게 당시엔 미스테리였는데,
아마도 우리나라랑 다르게 시프트제로 여분의 알바를 여럿 두는 시스템이다보니
나를 그냥 잉여 알바로 빼 두고 급할 때만 쓰려고 했었는데 내가 먼저 선수쳐서 그만 둔 것 같음)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싫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데...
거기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호스트들이랑 수다도 좀 떨면서 이웃(?)들과 친분을 쌓았어도 됐을텐데...
전단지 나눠주기 싫어서 알바를 그만뒀던 내가 여기와서 이러고 있다니
돌아가신 할머니가 웃으실 일이긴 한데
여기선 유일한 원어민으로 학당의 마스코트 노릇을 해야하니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정 하기 싫다면 그냥 앉아만 있어도 된다고 말해 주니까
왠지 일어나서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할 때는 인니어로 해야 하니까
어차피 내 역할은 '원어민 여기 있습니다, 짠!' 정도의 관심만 끌어주면 된다.
그래서 열심히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조금 재미있었다)
...그때 일본에서도 나에게 맘대로 하라고 했다면 어땠으려나.
나에게 선택권이 넘어왔다면 내 발로 걸어나갔을까?
아니면 어린 마음이라 끝까지 안하고 말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