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하이팅 Dec 29. 2016

[제 14 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Marc부부와 함께 나눈 베스트말레(Westmalle)



2015.08.30-31

자전거 여행 18-19일 차






자전거 여행자들이 호스트 집에 방문하면

꼭 듣는 질문들이 있다.



물 필요하니? 넌 맥주가 좋겠지?

배는 안 고프니? 맛은 어떻니?

잘 잤니?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대답하는 말이 있다.



"네! 정말 맛있어요"



가리는 음식도 없어요

입이 짧지도 않아요

세상에 처음 보는 음식이라도

제겐 다 맛이란 게 있네요!


덕분에

호스트들이 차려준 음식들을

늘 두 그릇 이상 먹는다.


매일 장거리를 달린 탓에

배가 고팠던 것도 사실이지만,

처음 본 사람들이 내게 베푼 호의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감사 인사이기도 했다.


나를 위해 어떤 음식을 할까 고민하고,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요리를 시작하고,

행여나 입에 안 맞으면 어쩌지.

못 먹는 음식이면 어쩌지.

그들의 고민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요리들.


당연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오늘도 어느 때와 똑같이 후식까지 싹 비우고

맥주 한 잔을 나누던 그때.


Marc부부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말이야.
얼마 전에 한국인들이 다녀갔어.

그런데 밥만 먹고 바로 방에 들어가더구나.

피곤했을 수도 있고,의사소통이 어려웠을 수도 있고..

분명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와 대화를 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질 않아서

조금 실망했어. 그래서 우린 한국인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했는데 너를 만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어.

넌 뭐든 잘 먹고, 또 노력하려 하고,

덕분에 우리가 더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고마워 Ha!



그때 느꼈다.


한 사람으로 그 나라 전체를 평가할 순 없지만
내가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다음 여행자
더 크게는 국가의 이미지로 직결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게 긍정적으로 이어졌다니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또 이제야 느끼는 거지만

한 그릇 두 그릇을 비워가던 내 모습이

그들에겐 마음을 내줄 수 있는 하나의 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어른들 말씀에

 잘 먹으면 복스럽다고들 하시는데

아마 이를 바라보는 그들도

딱 그 기분이 아니셨을까 싶다.



그 이후론 꼭 빼놓지 않고 하는 인사말이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ps) 얼마 전, 유럽 자전거 여행을 하던 한 여행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Marc부부네서 머물고 있는데 저의 얘기를 신나게 하셨다고 말입니다.

다음번엔 신혼여행으로 꼭 다시 찾아오라고 하셨던 두 분인데, 너무 늦지 않게 찾아뵙겠습니다.


Marc 부부와의 저녁만찬에 함께한 Westmalle


7명의 대식구를 설명해드리는 중
칼로리 걱정은 잠시 내려두는 거래요
westmalle를 그냥 지나친 아쉬움을 이곳에서 해소하다니!
아침도 이렇게 싹싹 비워냈네요
벨기에 국경을 넘을 때까지 함께 해주신 두분과의 모닝라이딩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제 7 잔] 내가 한 번 퀴즈를 내볼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