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하이팅 Nov 17. 2020

영화 속 맥주 한 장면 - 04 미술관 옆 동물원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시작도 안 해보고 아쉬워하는 것보다 나아


출처 : 미술관 옆 동물원 - 왓챠



짝사랑은 때로 그러하다. 그 사람이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소중히 키워 온 나만의 환상이 깨지기라도 할까 봐. 상점 안 놓인 신발을 그저 지켜보던 춘희(심은하)처럼 환상 속에 그저 남겨두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 나한테는 안 어울릴 거야

- 신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그 둘의 대화처럼 춘희와 철수(이성재)가 생각하는 사랑은 다르다. 미술관에서 정해진 프레임 속에서 작품 보기를 좋아하는 춘희와 살아있는 동물들을 직접 볼 수 있는 동물원을 좋아하는 철수처럼. 



출처 : 미술관 옆 동물원 - 왓챠



시무룩해있는 춘희에게 위로를 건네기 위해 맥주를 함께 나누던 철수는 본인이 생각하는 사랑을 말한다. 사실 영화가 흘러가는 내내 춘희와 투닥거리면서 다른 가치관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시작도 안 해보고서 아쉬워하는 것보다 나아.

... 끝까지 가보기 전까진 미련이 남을 텐데?



학창 시절엔 춘희의 사랑을 믿었다.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오길 바랬고 나는 알지만 그는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섭섭하기도 했다. 시작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실망할까 봐 내 생각과 다를까 봐 사랑이 아닌 '짝'사랑으로 남겨두었다. 그렇게 바보같이 좋은 인연을 놓친 경우도 예상대로 실망과 상처만 남은 경우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 마음을 살짝 들여다보면 그때의 나는 그 사람보다 그로 인해 상처 받고 울고 웃다 흐트러지는 내 모습을 감당하기 싫었던 탓이다. 


지금의 나는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태도는 싫지만 사랑에 대한 철수 의견을 들으며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결국엔 쇼룸 안의 신발이 내게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직접 신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처럼 그 사람과 내가 진짜 인연인지 아닌지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출처 : 미술관 옆 동물원 - 왓챠


그렇게 다른 생각을 하며 티격태격하던 둘은 어느새 한 프레임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 것도 잦은 스킨십으로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니다. 누구는 맥주를 마시다 트림도 하고 배꼽 보이게 스트레칭도 하지만 노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미처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레 서로에게 스며들게 된다.


사랑이란 게 처음부터 풍덩 빠져버리는 줄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버리는 것인 줄은 몰랐던 것처럼.


그 둘이 시작한 사랑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우선 시작은 됐으니 안 해보고서 후회할 일은 없겠다. 서로 다른 그 둘이 섞이는 과정이 과장스럽지 않고 유쾌했던 것처럼, 미술관을 좋아하던 춘희가 철수를 찾아 동물원을 가고 동물원을 좋아하던 철수가 춘희를 찾아 미술관을 간 것처럼 서로에게 천천히 물들어가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속 맥주 한 장면 - 03 아이 필 프리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