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꽤나 깐깐하고 고지식한 사람이다. 젊은이들의 옷차림과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도, 자신이 반 평생 일해온 포드사의 자동차가 아닌 일본산 차를 몰고 다니는 아들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민자들의 비율이 점점 늘어가는 이 동네에 옆집은 늘 사람이 들락날락 거리고 심지어 아시아계 사람이라니. 그들이 내 마당의 잔디로 넘어오는 것도 무슨 말인진 모르겠으나 날 보고 항상 나쁜 소릴 떠들어대는 그 노인네도 싫다. 무엇보다 한국전쟁에 참여하며 이제껏 총을 겨누며 옳다고 지켜온 미국적 가치와 정의가 흔들리는 이 사회가 불만이다. 이런 여러 가지 정교한 설정들로 그는 미국 보수주의자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마냥 밉지만은 않은 이유는 나름 흔들리지 않는 신념, 정의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이유 없이 때린다던가, 지나가던 여자애를 괴롭힌다던가. 그런데 매번 괴롭힘을 당하는 애들이 옆집 애들이라니. 그건 됐고 괴롭히기를 일삼는 녀석들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내 한 평생 총을 다뤄왔다. 사람도 눈 앞에서 여럿 죽여봤다고!
그런가 하면 그는 늘 혼자다. 이 세상 최고의 여자와 결혼한 사람이라 자부하던 그의 곁에 더이상 그녀는 없다. 생일날 찾아온 자식들은 선물을 꺼내 들며 요양원에 보내려 한다. 심지어 암이라니. 전화를 걸어 위로를 구할, 아니 꺼낸다 한들 진심으로 걱정하며 내 이야기를 들어줄 자식들도 없다. 이 집을 지키는 강아지 데이지와 맥주. 그 정도면 충분하다.
생일날. 어김없이 데이지를 말동무 삼아 캔 맥주를 꺼내 마시던 그에게 일전에 구해준 옆집 여자애 '수'가 찾아온다.
출처 왓챠 그랜토리노
출처 왓챠 그랜토리노
- 와서 같이 드세요. 맥주도 있어요.
- 혼자보다는 그래도 사람들과 마시는 게 좋겠지.
몇 번을 거절하던 그는 맥주가 담겨있던 빈 아이스박스를 펼쳐보곤 못 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선다. 마침 오늘은 내 생일이기도 했으니까. 아낌없이 음식과 맥주를 꺼내 주던 그들을 보며 자식보다 훨씬 낫다며 처음 보는 이들과 그 관계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낀다.
출처 왓챠 그랜토리노
이 장면은 월트가 옆집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편견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진정 맥주가 더 필요했던 걸지도 모르지만 이를 핑계 삼아 잠시나마 외로움을 떨쳐내고 싶었는지도. 그렇게 자신의 오랜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 했던 타오에겐 공구를 쓰는 법과 남자로서 대화하고 커가는 방법도 전수한다.
보수주의자였던 그가 그들과 어우러진다고 해서 극적으로 한 평생 추구하던 가치가 변하진 않는다. 함께 어울리면서도 소신은 어김없이 주장한다. 그렇게 본인만의 방법으로 천천히 자연스럽게 변화를 맞이 한다.
그가 마음을 여는 장면은 영화 말미에 한 번 더 등장한다. 고해성사를 통해 참회하길 바란다며 남편을 부탁하고 간 아내의 요청으로 매번 찾아온 신부에게 말이다. 처음엔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월트'라 부르는 신부를 단호하게 거절하던 그가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 월트라 불러.
그리고 그는 다시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후를 맞이하러 간다. 늘 꺼내들던 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말이다.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가 함께 맥주 마시기를 거부했다면. 타오와 수를 돕고 정을 내주지 않았더라면. 그가 한 평생 추구해온 보수주의적인 가치와 태도가 서서히 변해갈 일도 그의 얼굴에 미소가 스며들 일도 없었겠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쓸쓸하게 배웅하던 영화의 시작점에서 본인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고 위로해준 이웃들과 함께 한 마지막까지. '혼자'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으로 시작된 작은 변화가 그의 삶에 깊이 파고들었고 영화 내내 묵직하면서도 아슬아슬하고 따스하면서도 참으로 먹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