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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하이팅 Nov 27. 2020

영화 속 맥주 한 장면 - 07 장고 : 분노의 추적자

맥주 두 잔 주시오


'나 이 영화랑 좀 안 맞는 것 같은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빌>은 절반 이상 눈을 가린 채 손가락 틈 사이로 봤고 이번 <장고>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시작과 동시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머리와 몸이 총으로 터져 나가는 모습에 잠시 시리얼을 먹던 숟가락과 그릇을 노트북 옆으로 밀어두었다. 나 이 영화랑 안 맞는 거 같은데.. 그만 볼까? 일시정지와 재생을 반복하던 찰나 화면이 전환되며 장고와 닥터 킹 슐츠는 어느 동네의 Bar에 들어선다.



"맥주 두 잔 주시오"



맥주라고? 나는 노트북 쪽으로 슬쩍 상체를 기울였다.


출처 - 넷플릭스 장고 : 분노의 추적자
출처 - 넷플릭스 장고 : 분노의 추적자



 갑자기 들이닥친 둘 때문에 보안관을 찾아 달아난 Bar 주인 대신 닥터 킹 슐츠(크리스토프 왈츠)는 직접 바텐더가 되어 맥주 2잔을 능숙하게 따른다. 탭에서 부드럽게 쏟아져 나온 맥주와 잔 위로 넘쳐나는 거품들. 섬세하고 생생한 사운드와 함께 하는 이 장면은 여느 맥주 광고 못지않다! 마른 목에 침을 꼴깍 삼키며 두어 번 되감기를 반복하다 정신을 번뜩 차리고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뭐든 잔인하게 터져버리는 장면 뒤에 맛깔스러운 맥주 장면이라니. 놀라운 일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는 장고(제이미 폭스)에게 맥주를 건네며 '건배'를 외친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인 듯 양손으로 조심스레 잔을 들어 마신 장고의 얼굴엔 흰 맥주 거품뿐 아니라 '응? 이거 물건인데?' 하는 놀라움이 묻어나 있다. 그래. 맥주는 그런 맛이라고! 점점 흥미진진해진 나는 초반의 잔인한 장면들은 잠시 잊어두고 영화에 몰입했다.


 사실 맥주를 마시던 장고의 모습과 달리 영화 중반 캘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피 터지는 싸움에서 이긴 흑인에게 "맥주를 마셔. 자격 충분해"라고 하는 대사를 보면 그들 입장에서 맥주는 쉬이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장고에겐 이 행위를 통해 한 번의 자유가 주어진 셈이다.



출처 - 넷플릭스 장고:분노의 추적자
장고가 맥주를 마시는 장면은 신분에서의 자유와 동맹을 맺는 시작점이 된다.



"노예 제도를 경멸하지만 자네 도움이 필요하니 날 돕는 걸 거절한다면 당분간 노예 제도를 이용할까 해. 말은 이렇게 해도 죄책감은 들어."

"같이 놈들을 찾으러 가자. 놈들을 찾아서 지목해주면 내가 죽일게. 자유는 물론 두당 25불을 주겠어."


 장고와 닥터 킹 슐츠가 함께 맥주를 마시는 장면은 노예 신분이었던 장고에게 자유를 약속하고 현상금 사냥꾼으로서 그 둘이 동맹을 맺는 시작점이 된다. 현상금이 걸린 형제들의 얼굴을 알고 있는 장고의 도움이 필요한 절실히 필요한 닥터 킹 슐츠는 노예 제도를 경멸하는 인물이기에 장고도 솔깃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 제안한다. 장고는 이에 관심있는 듯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후 그가 제안하는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는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장고도 대단하지만 닥터 킹 슐츠라는 캐릭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노예를 사고파는 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닌 나쁜 사람들의 시체로 거래를 하고, 장고에게 자유를 선사하며 그의 아내를 구출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마지막 씬에서 본인이 죽을 걸 알면서도 캘리에게 총을 쏜 그가 "미안해. 참을 수가 없었어"라며 유언처럼 내뱉던 대사에선 그의 성격과 캐릭터를 분명히 알 수 있기도 하다. 그 앞엔 (못된 짓을 하는 이 짐승만도 못한 놈을 도저히)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을 테지. 다른 이들과 달리 인간적이라고 해야 하나 이상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맥주도 한 잔이 아닌 두 잔이었다. 또 함께 잔을 부딪히며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 마시던 닥터 킹 슐츠의 모습에선 다른 백인들처럼 장고를 노예로 부리거나 짐승처럼 대하지 않고 그저 똑같은 사람으로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덕분에 장고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또 아내를 찾는 남편으로서 긴 여정을 달려가는 인물이 되고, 나 역시도 165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을 그들과 함께 달려갈 수 있었다.


 잔인하다 생각했던 장면은 여전히 두 눈 뜨고 보기 힘들지만 숨은 장치들과 OST, 무엇보다 캐릭터들에 굉장히 매력을 느꼈다. 나쁜 이들에게 복수하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했으니 내게 꼭 안 맞는 작품이라 단정짓기도 어렵다. 혼자 보긴 아깝다. 다음번 다시 이 영화를 찾을 땐 시리얼 대신 맥주를, 혼자가 아닌 친구를 옆에 두며 긴 여정에 함께 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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