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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감자 Jan 03. 2023

시급과 일급의 나비효과

공공 도서관 자원봉사 (4)

/ 얼마 전에 약관을 잘못 이해해서 금전적인 손해를 봤다. 5000만원 이상의 예치금에는 기존 이율 2.3%보다 높은 4%를 준다는 문구였다. 나는 이것을 5천만원이 넘어가면 전체 금액에 적용되는 이율이 달라진다고 이해했으나 실제 이자가 지급되는 것을 보고 뒤늦게 나의 착오를 깨달을 수 있었다. 5천만원을 넘긴 금액에 한해서만 적용된다는 것이 팩트였다. 그 날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은 지난 주, 나는 또 어마어마한 착각으로 큰 상심을 겪었다. 

 - 소정의 실비 지급(1일 4시간 11,000원) -

너무나 명확하게 1일 11,000원이라고 돼있는 이 사항을 나는 시급 11,000원, 그러니까 일급 44,000원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이해한 것이다. 12월 마지막 주에 합류해 3일 일하고 월말에 통장에 꽂힌 돈을 보고 나는 심히 당황했다. 하루 일당만 들어온 건 아닐까, 8.8% 공제한다고 했는데 그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인가(말도 안되는 근거들을 모아 추론하고 있음. 현실을 부정하는 상황) 등등 잠깐 사이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다시 모집 공고를 확인한 결과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내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는 것 외에는 없었다. 

'아, 그래서 사서 선생님들께서 나를 진정시키신 거구나. 작작 열심히 하라고... 오케. 인정.'

사람은 역시 보고싶은 대로 보고, 믿고싶은 대로 믿는 어리석은 존재다. 최저시급이 9,620원인 시대에 '4시간'과 '11,000원'이라는 숫자가 나란히 놓여있으면 이를 시급으로 생각하는 것은 상식의 영역 아닌가? 이마저도 처절한 현실을 모르는 무지한 발언일지도 모른다. 상식은 그 자체로 상대적이니까. 시대와 세대, 나라와 지역 간에도 각기 다른 상식을 지니고 있는 세상에서 나는 살고있으니까.


/ 11,000원이 시급이 아닌 일급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의 첫 출근. 자전거로 10분 남짓한 거리의 출근길, 시간 계산을 잘못해 조금 늦게 출발했다. 그래도 늦는 건 싫다. 돈을 떠나서 이것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고 나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벌써 좋으니까. 있는대로 페달을 밟아 늦지 않게 도착했단. 그런데 What a coincidence! 가는 길에 동네에 사는 이웃을 만났다. '이 아침에 자전거로 도로를 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단연코 너'라는 생각에 차로 이동하던 중에 차를 돌려서까지 창문을 열고 내게 인사했다. 하필 또 내가 사랑하는 조카들도 동승 중이어서 2학년이 된 걸 축하하고, 나를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던 둘째와 필카를 찍는 등 늦은 와중에도 난리를 피웠다. 시급 11,000원 받는 일이었으면 이렇게까지 늑장 부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시급과 일급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구나.


/ 어제는 휴관일이었다. 휴관일 앞에는 주말이 끼어있었다. 동네 학교들은 일제히 방학을 했다. 와,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이 반납되어 돌아왔고 카운터 사서 선생님들 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동원돼 일사분란하게 정리했다. 보통 오픈 후 1시간이면 굵직한 일은 끝이 나는데 오늘은 2시간이 넘도록 정리해도 책이 줄지 않았다. 사서 선생님들은 1시간쯤 남았을 때 나를 포함한 봉사자들을 휴게실로 데리고 들어가 강제 휴식을 명하셨다. 감사합니다...


/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팔, 손가락 관절이 노후되었음을 느낀다. 커피 일을 놓은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팔이 아프고 이따금씩 손가락도 붓는다. 서가 정리를 할 때 트레이에 책을 싣고 이동하기 때문에 한 권씩 꽂는 서가 정리가 뭐 대수일까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첫 날 일한 후 부터 자극이 왔다. 그동안 몸으로 일해왔던 나는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일하는 게 롱런하는 지혜라는 것을 알고있다. 그럼에도 한두 권씩 드는 것에도 무리가 가고 반복적으로 책을 뽑고 꽂는 일이 은근히 소모적인 일이라고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서가 정리는 대체로 자원 봉사에게 맡기고 실제 사서 선생님들은 이렇게까지 책 정리에 시간을 쏟지 않으시지만 그럼에도 줄곧 책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분명 신체적인 어려움이 있으실 것 같다. 마침 여러 권을 한 번에 들고 옮기는 나에게 넉살 좋은 사서 선생님께서 한 마디 해주셨다.

"왜 이러시는 거예요. 그러지 마세요. 우리 오래 일해야죠."


/ 내가 하는 일은 서가에 꽂혀있는 책을정돈하고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대여한 후 반납한 책, 도서관 안에서 읽다가 정리함에 두고 간 책을 제자리에 꽂아두는 것이다. 말인 즉, 사람들이 관심있어하는 분야를 의도치 않게 훔쳐볼 수 있다는 재미 요소를 이 일에 갖고 있다는 뜻이다. 도서관에서 (고작) 4일 일하면서 느낀 사람들의 관심은.

(1) 문학, 특히 소설 책을 많이 빌려 읽는데 판타지 소설이 이렇게나 인기있는 줄 나는 몰랐네. 좋은 작품과 인기있는 작품은 1:1의 상관 관계를 갖지는 않는다. 인기를 득하기 위해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

(2) 특정 주제의 책은 절대적으로 장서수가 많다. 육아, 자녀 교육, 부동산, 재테크. 우리 나라는 재테크와 부동산은 마치 별개의 시장 같기도 하다. 부동산 세계가 비대하고 너무 막강해서. 부동산 강국 대한민국... 

(3) 다음 날 새로운 신문을 꽂으러 가면 보통 조선일보가 가장 너덜너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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