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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독서록(156)

by N 변호사 Mar 08. 2025

2010-03-13 오전 11:42:18


제목 : 난중일기

저자 : 이순신

번역 : 송찬섭

출판사 : 서해문집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처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었다.


난중일기의 번역판은 무척 많은데 이 책이 제일 나은 것 같아서 골랐다. 단지 번역만 한 것이 아니라 풍부한 관련자료를 실었다.


다 읽고 난 지금, 실망했다.


물론 난중일기에 실망했다고 하여 충무공 이순신에게 실망한 것도 아니고 그의 화려한 업적을 의심하는 것도 아니다.


난중일기에는 아무 내용도 없었다.


그의 전략 구상도 없었고, 귀양을 가게 된 배경도 없었고, 문학적인 가치가 있는 글귀도 없었다. 거북선에 관한 구상, 거북선을 만드는 과정, 거북선을 전투에 활용하는 장면에 관한 이야기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난중일기를 읽고 거북선이 정말 존재하였는지, 그리고, 충무공이 만든 것이 사실인지도 의심하게 됐다. 어떻게 그런 대단한 발명품을 본인이 만들었는데 일기에 전혀 언급이 없을 수 있겠는가.


충무공 이순신의 신화는 어떤 자료에 근거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난중일기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점을 알게 되었다.


첫째, 이순신은 원균을 처음부터 끝까지 혐오하였다.


일기는 7년치인데, 첫 일기부터 마지막 일기까지 원균에 대한 험담이 끊임없이 나온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밑줄을 쳤는데 거의 열흘에 한 번 꼴로는 원균에 대한 욕이 나와서 나중에는 밑줄 긋기를 포기했다.


이순신의 기록이 객관적인 것이라면, 원균은 술주정뱅인데다가 간교하였다. 주사가 심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부하를 멀리 심부름 보내 놓고, 그 아내를 겁탈하다가 실패하였다는 기록도 나온다.


따라서 어떤 드라마나 소설이 이순신과 원균이 사실은 친했다는 식으로 줄거리를 만든다면 땅속에 잠들어 있는 이순신이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일어날 것이다. 난중일기를 한 번이라도 읽었다면 그런 황당한 줄거리는 절대로 만들지 못한다.


이순신의 원균에 대한 각종 험담은 끝이 없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선조가 원균에게도 이순신과 똑같이 선무 1등 공신으로 표창한 것을 보면 이순신만 원균을 싫어한 것인지, 아니면, 원균의 악행을 임금은 몰랐었는지, 그것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순신이 원균을 그토록 싫어했다면 당연히 원균도 이순신을 싫어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작용과 반작용 법칙은 진리이니까.


둘째, 이순신이 살던 시절에는 공휴일이 없었다. 그러나, 나라 제삿날에는 공무를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제삿날이 엄청 많다. 죽은 왕 뿐만 아니라 그 왕비들의 제삿날도 챙겼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순신 본인의 선친에 대한 제삿날 때도 관청에 출근하지 않았다.


세째, 이순신은 활쏘기를 부지런히 하였다. 몸이 아프지 않으면 거의 매일같이 하였다. 수군이니까 칼쓰기 보다는 활쏘기가 더 중요한 무술이었을 것이다.


넷째, 그 때도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셨다. 며칠에 한 번은 술을 많이 마시고, 술 때문에 고생한 기록이 종종 나온다.


다섯째, 바둑, 장기를 즐겨 두었다.


여섯째, 형벌이 무지 셌다. 예사로 곤장 80대다. 80대면 거의 죽음에 이를 수 있는 형벌이다. 나는 요즘도 곤장 제도가 있으면 한다. 벌금보다는 곤장이 효과적이다. 


형벌은 무서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웬만하면 집행유예나 벌금이다. 물론, 이런 제안을 하면 시대착오적인 것을 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집행을 하지 않는다는 위선을 떠는 나라니까. 사형폐지론의 유일한 합리적인 근거는 만에 하나 억울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외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식의 논리는 하품만 나오게 할 뿐이다. 형벌은 국가가 피해자 대신 복수해 주는 것이 그 본질이다. 자기 자식을 강간하고 살해한 갈아죽여도 시원찮을 나쁜 놈을 국가가 대신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 형벌의 기능인 것이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이 목을 베라고 지시했다는 장면도 많이 나온다. 붙잡혀 온 왜군들은 여지없이 목을 베 버리고, 그 외 수하의 사람들도 목을 많이 벤다. 목을 베는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목을 치라고 할 때 별로 이순신은 괴로워하는 것 같지 않다. 그 시절에 태어나질 않기를 잘 했다.


한편 도둑을 붙잡아서 곤장을 때리고, 얼굴에 먹물로 도둑이라고 새겨 넣는 장면도 나온다.


일곱째, 그 때도 접대 문화는 성행했고, 뇌물을 좋아했다. 특히 원군으로 온 명나라에 사람들에 대한 접대는 이순신도 매우 신경 쓰는 부분이었다. 그 때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었다. 재물을 탐내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여덟째, 어머님에 대한 생각이 난중일기에는 가득하다. 원균에 대한 비난과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거의 비슷한 양을 차지한다. 이순신의 어머님에 대한 효성이 남달랐다고 보기 보다는 그 시대의 유교적 풍습이리라. 아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몇 번 아내가 심하게 아팠을 때만 간단히 언급이 될 뿐이다. 


이순신의 막내 아들 면이 전사를 한다. 그 장면에 이르렀을 때 이순신의 가슴 아픔이 일기에 절절이 나타난다.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아픔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말 고통스러울 때는 문장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아홉째, 이순신은 걸핏하면 아프다. 그러나 이순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치료방법이 없다. 그냥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다. 결국 옛날 사람들의 수명이 50살을 넘기기 힘들었던 이유는 50살이 넘으면 면역력이 떨어져서 약간의 바이러스 감염에 의하여도 죽게 되고, 약간의 기의 이상에 의하여도 속절없이 죽게 되기 때문이다. 


열번째, 그 때도 잔머리를 굴리는 인간들이 위, 아래로 많았다. 갖은 핑계를 대면서 전투에 임하지 않으려는 장수들을 이순신이 비난하는 장면도 많고, 반대로 임금은 그런 이유로 이순신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순신, 본인의 견해에 의하면 다른 장수들이 전쟁에 임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기 때문이고, 본인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이순신도 다른 장수를 오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외에 이 책에서 알게 된 내용이 많으나 이쯤에서 생략한다. 그러고 보니 읽지 않은 것 보다 읽은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책은 정말 읽고 난 후 괜히 읽었다는 책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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