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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억누르다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

최은영 <쇼코의 미소>

by 새벽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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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억누르고 억누르다 결국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엄마였다. 평생을 함께 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눈물을 풀어낼 수조차 없는 사람, 울고 게워내서 씻어낼 줄을 모르는 사람, 그저 차가운 손과 발, 두통처럼, 보이지 않는 증상으로만 아픈 사람이 엄마였다. 장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좀처럼 따듯해지지 않는 엄마의 얼음장 같은 손을 붙잡고 있었다. 엄마의 흰자위는 하얗다못해 파란빛이 돌았다. "울고 싶어." 그 말을 하며 엄마는 힘들게 웃었다. - 최은영 <쇼코의 미소> -




내가 꽉 찬 물풍선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너무나 팽팽해서 까칠거리는 것이 살짝만 스쳐도 펑 터져 눈물이 콸콸 쏟아져내릴 것 같았다. 그래서 누가 건드릴 새라 아무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물풍선을 고이고이 모셔두었다. 그냥 풍선은 놔두면 며칠 지나지 않아 알아서 바람이 빠져 쭈그러지던데, 물풍선은 시간이 지나도 물이 새어 작아지기는 커녕 원래 모습 그대로였다. 나중엔 대놓고 꾸욱 눌러도 말랑거리는 공처럼 쑤욱 들어갔다가 원상태로 돌아올 뿐 알아서 터지지는 않았다. 내 슬픔도 그 상태다. 하도 조심스럽게 다루다 보니 이제는 쌓인 감정을 분출하려고 찔러도 절대 나오지 않는다. 물풍선 속 오래된 물처럼, 내 눈물도 내 안에 그대로 고여 있다. 언제부턴가 집 안에서 맨발로는 다니지 못해 하루종일 양말을 신고 있다. 나이 탓이려니 했는데 이 글을 읽어보니 내 슬픔이 수족냉증의 형태로 돌변해 몸 안을 돌아다니는 것 같다. 두렵다. 이러다가 슬픔을 영원히 내보내지 못하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게 될까 봐, 아니 죽어서도 슬픔 속에서 출렁거리게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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