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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Apr 05. 2024

화목순대국(광화문), 곱창과 순대. 그 환상의 조합


누군가 나에게 '대체 뭐 하는 거냐, 국밥 리뷰어로 변신한 거냐'라고 묻던데, 전혀 아닙니다.

저는 국밥 전문 에세이스트가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이 집만큼은 꼭 소개해야겠다.


퇴근하고 경복궁에 왔다.

오랜만이네.


궁궐투어는 아니고, 순댓국 먹으러 왔다.

궁엔 외국인들도 있고, 한복 입은 젊은 친구들도 많다.


광화문에서 시청방향으로 좀 걸어 내려오면 된다.

여기 왔다. 화목순대국.


대부분 맛집은 브레이크타임이 있다. 방문할 때 잘 알아보고 가야 허탕 치는 일이 없다.

브레이크타임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찾아갔다.

줄 서서 조금 기다리다 바로 들어왔다.

실내는 이렇다. 넓지 않다.


혼자 왔다고 말씀드렸다. 한쪽 구석에 있는 1인석에 앉았다.

밑반찬은 이미 식탁에 세팅되어 있다. 생파가 있네. 신기하다.


이윽고 순댓국이 나왔다. 팔팔 끓어서 아주 마음에 든다. 아름답다. 너무 뜨거워서 숟가락을 넣기 전에 조금 기다렸다. 기다리며 국밥을 찬찬히 감상했다. 문득, 국밥도 일종의 예술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건 작품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국물은 백암보단 조금 가볍고, 호석촌보다는 무겁다.

아직 끓고 있다


밥은 잡곡밥. 말아져 나온다. 따로 달라고 하면 따로 주시지만, 이 가게 원래 방침대로 먹고 싶었다. 이유가 있으니 말아서 주는 거겠지.


나는 평소에도 파를 많이 넣어먹는데, 여긴 큼직큼직한 파가 듬뿍 들어가 있어서 좋다. 먹는 내내 아삭한 파의 식감과 그 상쾌한 향이 느끼함을 잡아준다.


이게 순대(위에 새우젓을 얹었다.)


밥이 말아져 나왔기 때문에, 먹으며 밥알이 국물을 흡수해서 혹시 죽처럼 걸쭉하게 될까 걱정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딱 먹기에 적당한 수준이다. 국물은 마지막까지 자작하게 남아있었다.


밥을 넣은 채로 팔팔 끓여서 내면

1. 국물이 잘 식지 않는 장점이 있다.

2. 식탁에 나올 때부터 이미 밥알에 국물이 깊이 배어있는 장점도 있다.


그렇지, 이렇게 밥을 말아서 제공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진짜 뜨겁다. 진짜로 많이. 급하게 먹으면 입천장 데니까 조심조심.

큼직한 파가 많이 들어있다.


깍두기는 새콤 쪽이다.


화목순대국의 시그니처. 곱창이 많이 들어있다. 이거 때문에 왔다.

쫄깃쫄깃하다. 계속 씹으면 특유의 고소한 맛이 나온다. 곱창전골 좋아하는 1인으로서 멈출 수가 없다.

이거지. 바로 이 맛을 못 잊는 거지.


생파를 된장에 찍어먹는데, 자극적이지 않고 맛있다.

살짝 매운 기운이, 오히려 기름진 국물과 잘 어울린다.

생파


고추에 된장을 찍어서 먹는다.

된장에 고추를 찍어서 먹는 건가.

나는 한글이 아직도 어렵다.

고추


아 점점 양이 줄어든다.

어쩌지. 특 시킬걸 그랬나.

안타깝다 안타까워.


다 먹었다. 아쉽다.

완료


아무래도 곱창이 들어있기에 돼지 잡내가 난다는 후기도 일부 있었지만, 나는 냄새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깔끔하다. 맛있다. 개인적으로 역대급이다. 왜 다들 화목 화목 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글 쓰면서도 침이 고인다. 이런 가게가 집 근처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게 밖으로 나오니 이미 해가 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비 내리는 광화문은 쓸쓸하지만 운치 있다.


이제 집에 가봐야겠다.

저는 국밥 에세이스트가 아닙니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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