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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Apr 26. 2024

팀, 완벽한 공감이란 먼 꿈같은 일


최근 알고 지내던 리더 한 분과 티타임을 하게 되었다. P팀장이라고 하자. 그는 10명 남짓의 팀을 리딩하는 분이었는데, 고충을 토로하셨다. '팀원들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내용이었다. 본인은 팀원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윗선과 싸우기도 하고, 최대한 팀원들을 위해 노력하는데, 이런 본인의 마음을 어떻게 공감시키고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중이었다.


나는 솔직한 내 경험을 이야기 해 드렸다. 나의 인생 속 좌절의 서사로, 나는 그 경험이 자랑스럽고 소중하다. 그런 내러티브와 스토리가 결국 나라는 사람을 흥미롭게 성장시켜 줬으니까.


P팀장에게는 ‘서로 공감하는 줄 오해하고 지내는 것 보다는, 공감하지 않은 상태를 어느정도 인정하고 지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는 취지로 내 경험을 소개해 드렸다. (전달이 잘 되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렇다, 그 오해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어떤 이야기를 해 드렸냐면.


옛날 옛적에 말입니다.




몇 년전, 면팀장 되었다는 글을 썼었다.

https://brunch.co.kr/@dontgiveup/43


당시 명목상의 이유는 ’잦은 시스템 장애로 개발자 리더가 필요하다‘였지만, 저 깊은 곳에는 상위 의사결정권자와의 의견차이도 있었다. 공통 플랫폼이라는 묘한 제품의 업무 범위와 우선 순위에 대한 인식의 괴리였다.


그 당시 나는 팀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팀의 방향을 정하고, 그에 따라 윗선과 우선 순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정책을 결정했다고 기억한다.


팀원들과의 공감에 따른 합리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한 팀이라고 믿고, 나는 실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장의 최전선에 선 전사가 된 것이다.


그래서, 팀의 대표로, 마치 정의의 사도인 양 미팅을 다녔었다. (오해마시길, 실제로 싸운건 아니다. 그럴 성격도 못되고. 주로 글을 써서 의견을 전달하고, 리뷰하고, 조율하고, 협의하며, 결정했다.)


면팀장 사건은 그렇게 쌓인 상위 의사결정권자와의 방향성 차이, 거기에 시스템 장애가 트리거가 되어 폭발한 이벤트였을게다. 제품을 운영하다보면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나니까.


나는 그래도

'팀원들을 위해서 그렇게 상위 의사결정권자와 논쟁하며 핵우산이 되었으니 후회는 없다.' 라는 생각이었다. 내 마음이 전달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우리 팀은 같은 생각으로 일하고 있었다, 라는 신뢰.



하지만 천만에. 그렇지 않았다.


내가 그 팀을 떠나고 몇 년 뒤에 몇몇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팀장이 왜 저러나 싶었어요."

"팀장이 회의에서 하도 강하게 이야기해서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따르는 척 한거죠." 라는 식의 이야기들이었다.


그 중 압권은,

"팀장이 부정적인 기운을 팀 내에 퍼뜨려서, 저희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따라갔던 것 아닐까요?"

"팀장이 윗선에 정치력을 더 발휘했어야지요." 류의 이야기였는데, 다 듣고나니 허탈했다. 낯부끄럽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팀의 의견을 수렴해서, 방향을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팀원들을 위한다고 열심히 의견을 피력하고, 뛰어다녔던건데, 받아들이는 팀원의 입장에서는 전~혀 아니올시다 였던거다. 팀원들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얼마나 답답했을까. 미안한 마음이다.


동상이몽. 나는 내가 만든 상상 속의 팀에서 싸우고 있었다.


회사를 떠난지 한 참 후에 들은 이야기니, 그건 솔직한 의견이자 피드백이었을테다. 늦게라도 듣게되어 다행이지.



자, 이 이야기에서 악당은 없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모두 선의를 가지고 일했다. 팀장도 팀원도 각자 역할을 충실히 다 했다. 열심히 뛰었다.


다만, 다양한 가치와 관점이 공존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그걸 하나로 모아 서로 오해가 없도록 공감을 만들어내는 리딩 과정이 그만큼 쉽지 않았다는 경험을 P팀장에게 공유하고 싶었다. 당시의 일로 나는 많이 배웠고, 지금도 노력중이다.


결국 팀의 방향은 리더 개인의 취향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수평적이고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문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누군가는 납득하지 않는다. 결국, 일부는 싫어한다. 아니 싫어하진 않더라도 ‘왜 저러나’ 하고 의문을 가진다. 그걸 팀장에게 말 할 수도 없다. 팀장은 ‘다들 내 의견과 같겠지.’라고 오해하고 열심히 뛴다. 팀원들은 그걸 바라보며 ‘쟤 왜 저러지?’ 라고 생각한다. 쓰다보니 참 슬픈 일이군.


팀 전원의 완벽한 공감은 이룰수도, 강제할 수도 없다. 우리가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처럼 물리적으로 신경계를 연결할 수 있다면 혹시 모를까. 무조건적인 맹신과 추종은 종교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리더라면 그 평범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 치 오차 없이 일사분란할 수는 없다.


꼭 일렬로 줄 서서 걷지 않더라도, 올바른 방향을 바라보고 자유롭게 함께 걸어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찌되었든 목적지로 가는 것이 중요하니 말이다.


당시의 교훈으로 나는 좀 바뀌었다. 뼈아픈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이다. 요샌 어느 정도 힘을 빼고 산다. 주먹을 꽉 쥐지 않는다. 날이 서 있지 않도록. 날카로운 내 태도가 팀 내에 시나브로 전염되지 않도록 말이다. 내가 뾰족해지지 않고도, 충분히 예리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회사에 이익이 되는 결과물을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유연하고 부드럽게 하려고 한다. 그러고 싶다. 그래도 성과는 나오도록 이끌 수 있다.


완전무결한 공감은 존재할 수 없어요.


그러니, P팀장님,

너무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계시니까요.

대한민국의 수많은 팀장님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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