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장시간 운전의 여파인지 오늘은 그나마 새벽 4시쯤 잠이 깼다. 조식을 먹으려고 식당에 갔는데 뭔가 분위기가 럭셔리하다. 4성급이라 해도 호텔 나름인데 여긴 진짜 럭셔리한 4성급이다. 손님들도 이 아침부터 대부분 정장 차림이고 동양인은 우리뿐이다. 다양한 종류의 빵, 치즈, 과일, 팬케이크, 베이컨, 생선요리, 콩소메, 각종 햄, 차와 커피, 디저트 등등 종류도 많다. 방도 예쁘고 어메너티도 좋더니 조식까지 만족스럽다.
게다가 체크아웃도 12시라 어제 제대로 못 본 엑상프로방스를 돌아볼 시간이 충분했다. 어제 잠깐 봤던 생 소뵈르 성당을 다시 둘러보고, 여기는 세잔의 생가와 아뜰리에가 유명하대서 어렵게 찾아갔는데 아뜰리에는 공사 중이어 들어가자마자 바로 되돌아 나왔고 생가는 구글맵도 정확하게 안내를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잘 모른대서 못 찾았다. 결국 세잔의 흔적은 한 군데도 못 찾고 미라보 거리로 갔다. 거리 가운데 장이 서 있고 내가 좋아하는 꽃가게도 보인다. 미라보 거리를 지나니 광장과 분수가 나오고 한 아저씨가 색소폰을 연주하시는데 그 소리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줬다.
다시 호텔로 들어와 체크아웃을 하고 주차장으로 가서 주차비를 내려고 보니 아무리 주차비 정산기에 주차권을 넣어도 금액이 나오질 않는다. 뭐지? 하며 일단 출구 쪽으로 나가서 티켓을 다시 찍어보니 차단기가 그냥 열린다. 무료~~~! 프랑스에 와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무료주차장이다. 우리나라에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자기네 호텔에 숙박을 해도 보통은 주차비를 내야 한다. 그것도 25유로 이상. 근데 무료라니~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뭔가 시작이 좋으니 오늘은 여행이 잘 풀릴 것 같다는 기대감마저 든다.
어딜 가나 주차가 제일 큰 문제라 주차장 때문에 아비뇽 숙소에 미리 전화를 했는데 유쾌한 남자분께서 호텔에 주차할 곳이 있고 게다가 무료란다. 완전 신난다. 근데 체크인이 4시부터라 아비뇽을 먼저 돌아보고 호텔에 가기로 했다. 엑상프로방스 시내를 벗어나니 한적한 도로가 나왔다. 양쪽으로 드넓은 초원과 아기자기한 집들이 있고 도로마다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곳. 그래~! 이게 내가 꿈에 그리던 진짜 남프랑스지. 길이 복잡하지 않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귤을 까먹고 노래를 흥얼거릴 만큼 운전도 여유로워졌다.
그러나 아비뇽 시내에 가까워지자 차가 많아지고 길도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구글맵에 아비뇽 교황청 근처 주차장을 찍고 갔으나 역시 한 번에 찾을 수는 없었고 몇 바퀴 돌다가 포기하고 다시 주차장앱에서 찾은 곳으로 갔더니 거긴 무료란다. 진짜 주차장 찾기 정~~~말 힘들다. 여긴 무료라서 좋은데, 문제는 교황청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점. 그렇지만 주차장에서 바라본 아비뇽의 모습은 엽서 그 자체다. 우리가 가보려던 아비뇽 교황청과 대성당, 생 베네제 다리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다시 주차장을 검색하고 이번엔 다행히 두 바퀴 정도 돈 뒤에 얻어걸린 격으로 교황청 바로 앞 지하주차장에 잘 찾아갔다.
주차장을 나오니 바로 앞에 거대한 성당과 교황청이 보인다. 사실 어느 건물이 교황청이고 어느 건물이 성당인지 잘 모르겠으나 대성당이라 짐작되는 곳을 물어물어 겨우 입구를 찾아 티켓을 사서 들어갔다. 보안검색을 하고 들어가 보니 입장료가 무려 12유로. 뭔 성당이 이렇게 비싸냐며 구시렁대고 들어갔는데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뭔 성당이 오디오 가이드까지 있을까 하며 들어갔더니 겉에서 보는 것보다 안은 더 어마어마하게 넓다. 오디오 가이드가 내비 기능도 있고 그림 모양의 바코드 같은 걸 찍으면 증강현실처럼 그 당시 방의 모습과 사람들이 보인다. 주사위를 누르면 보물찾기 미션도 있다. 게다가 안내해주는 방마다 보물이 가득했다고 설명이 나온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와서 생각해보니 거기가 교황청이었다. 교황청이랑 성당이 붙어있어서 우리가 착각한 거였다. 거기도 여유를 갖고 돌아보면 정말 재밌을 거 같지만, 여유를 갖고 돌아보기엔 우린 몸이 너무 피곤했다.
시간을 보니 점심때가 이미 훌쩍 지났다. 근처 식당들을 돌아보는데 닫혀있는 식당이 많아서 헤매다가(아마도 브레이크 타임이었나 보다) 빠에야 사진이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빠에야와 오늘의 수프를 시켰는데 야채수프에서 신기하게도 김치찌개 맛이 났다. 토마토 때문인 것 같지만 뭔가 한국스러운 맛이 좋았다.
자~ 이제 숙소만 가면 된다. 구글맵의 후기를 보니 농가형 럭셔리 호텔이고 주인아저씨가 엄청 친절하고 유쾌하다고 했다. 한적한 도로를 한참 달리니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가 나온다. 그런데 효리네 민박처럼 철문이 닫혀있다. 초인종을 누르자 "웰컴! 웰컴!" 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마치 성문처럼 문이 열린다. 차를 타고 정원을 지나니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손을 흔들며 반겨주시고 차에서 내리니 활짝 웃으며 환영의 악수를 한다. 구글맵의 후기처럼 유쾌한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 보니 호텔이 아니라 어느 럭셔리한 저택에 와있는 기분이다. 화려한 거실과 식당, 야외 정원, 과수원, 바비큐 파티장, 수영장, 크로켓 경기장, 다트장, 자쿠지까지 정말 없는 게 없다. 우리가 계속 감탄하며 좋아하자 아저씨도 행복한 표정이다. 이 모든 걸 갖고 있는 이분들은 부자임이 분명하다. 내가 아저씨한테 '진짜 부자시네요~'라고 몇 번 얘기했는데 부인하지 않는 걸 보니 진짜 부자임에 틀림이 없다. 정말 완전 부럽다~~~
길고 긴 호텔 안내가 끝나고 벽난로가 있는 거실에 앉아 웰컴 드링크로 와인을 마시며 아저씨와 나누는 대화가 즐겁다. 대화를 마친 후 우리 방으로 안내해주셨는데 방문을 열자마자 감탄이 터져 나온다. 완전 예뻐~~~ 공주방이 따로 없다. 거실까지 딸린 스위트룸에 심지어 테라스에는 우리만의 정원도 따로 있다. 여길 오려고 그렇게 힘든 길을 온거니? 렌터카가 아니었다면 절대 올 수 없는 곳. 그동안의 맘고생, 몸고생을 보상해 줄만큼 감동적인 곳이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이 곳에 하루가 아니라 이틀간 머무는 게 너무너무 다행이다. 방안 이곳저곳을 돌아보면서도 끊임없이 감탄사가 나온다. 방이 너무 예뻐서 후줄근한 잠옷으로 갈아입지도 못 할 만큼 말이다.
여행은 롤러코스터와 같다. 남들이 보기엔 좋은 모습만 보여지기 때문에 마냥 부러워할 수도 있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수십 번 왔다 갔다 한다. 어제가 지옥이었다면 지금 이 순간은 완벽한 천국이다. 난 지금 행복하다~
참! 이 곳의 단점을 굳~이 말하자면 인터넷이 잘 안 된다는 점과 스위트룸이라 화장실이 멀다는 점이다. 시골이라 그런지 유심은 당연히 안 터지고 와이파이도 잘 안된다. 옛날 한석규의 광고처럼 휴대폰은 잠시 꺼둘 타이밍인가? 인터넷이 잘 안 되는 게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이상하게 맘에 든다. 암튼 난 이곳이 너무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