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터지지 않는 인터넷처럼 여긴 모든 것이 여유롭고 느리다. 심지어 조식도 여느 호텔과 달리 9시부터 10시 사이에 아무 때나 나오란다. 조식이 늦는 바람에 우리도 덩달아 늑장을 부릴 여유가 생겼다. 9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주인 부부가 나와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식당에 가 앉아있으니 빵이며 치즈, 유기농 과일과 요구르트, 커피 등을 차려주시며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하란다. 호텔 조식만큼 종류가 다양하진 않지만 딱 먹을 만큼만, 정성스레 잘 차려진 상을 받은 느낌이다. 그리고 아저씨가 지도를 갖고 와서 근처에 가볼만한 곳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정말 좋은 분인 것 같다. 참! 나중에 안 사실인데, 철석같이 부부인 줄 알았던 이 분들이 사실은 남매지간이란다. 주인아저씨가 자꾸 '마이 시스터~시스터' 하시길래 우릴 친근하게 부르는 말인 줄만 알았는데 진짜 여동생을 가리키는 말이었나 보다. 우린 처음부터 부부라고 단정 짓고 우리 멋대로 해석해버린 것이다. 선입견은 참 무섭다.
아침을 먹고 저택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한 후 바로 근처에 있다는 이름도 어려운 일쉬라소르그 마을로 출발하려는데 주차장에 차가 4대나 있다. 어제 왔을 때 차가 있길래 다른 손님이 더 있나 보다 했는데 호텔엔 우리밖에 없었으니 그 차들은 모두 주인 부부의 차인가 보다. 역시 진짜 부자임에 틀림이 없다.
일쉬라소르그는 차로 10여분 정도 걸리는 작은 마을인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냥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이다. 워낙에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관광객은 1도 없고 호젓하게 산책하기에 좋은 곳인데 오늘은 바람이 불어 추운 관계로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왔다. 사실 어디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고 물어볼 사람도 없을 정도로 한적한 마을이었다.
이제 오늘의 주 목적지인 고흐의 도시 아를을 찍고 가는 길. 오늘의 메인 미션은 프랑스에서 주유하기이다. 블로그에서 미리 찾아보긴 했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긴장이 된다. 근데 아무리 가도 주유소가 나오지 않는다. 불안하다.... 한참을 더 달려 아를까지 가서야 주유소가 보인다. 심호흡을 하고 차를 일단 주유기 앞에 세웠는데 주유구가 반대편에 있다. 이런... 다시 한 바퀴 돌아 차를 세우고 주변 아저씨한테 도움을 청하니 영어를 전혀 못하신단다. 카드결제밖에 안 된다고 나와서 편의점 직원한테 물어보자 현금 계산이 가능한 주유기가 따로 있단다. 다시 차를 돌려 주유기 앞에 세우고 조심스레 주유를 했다. 기름이 가득 차니 주유기가 멈추고 그 금액만큼 편의점에 가서 돈을 내면 끝! 오늘의 미션 클리어~~~!
기분 좋게 주유를 하고 아를 주차장도 한 번에 찾았다. 오늘은 뭔가 순조로운 느낌이다. 오늘의 투어 순서는 "아레나 원형경기장- 생 트로핌 성당 및 광장- 고흐가 있었다는 정신병원(고흐가 다녔다던 정신병원인데 현재는 상가로 쓰고 있고 중정원이 예쁘다.)- 고흐 카페(안타깝게도 문을 열지 않아서 밖에서만 보고 왔다.)-점심(어딜 가야 하나 헤매다 현지인들이 엄청 많은 곳으로 들어가 오늘의 메뉴인 소고기 요리와 직원이 추천해준 치킨 구이를 먹었다. 맛은 뭐 괜찮았다. 나름 이 동네 핫플레이스인 듯하다.)-고흐의 동상이 있는 정원" 끝~!
사실 고흐는 미술책에서 본 그림 몇 편이 다였는데, 실제로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 자주 다녔던 카페와 공원을 직접 가보니 내가 고흐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여전히 그림은 잘 모르지만 앞으로 고흐의 그림만큼은 다르게 보일 것 같다. 뭔가 고흐와 친해진 느낌이랄까?^^
고흐에 흠뻑 취했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역시나! 언제나처럼 지겨우리 만큼 많은 회전교차로를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프랑스는 회전교차로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간다. 오늘까지 100번도 넘게 회전교차로를 지난 것 같다. 아... 프랑스는 회전교차로의 늪이다. 그래도 무사히 무난하게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게 돼서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