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비뇽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한테 항상 프린세스라 불러주던 유쾌한 아저씨와도 비쥬(프랑스식 볼뽀뽀 인사)로 작별인사를 한다. 나의 첫 비쥬는 멋진 프랑스 남자랑 하고 싶었는데 현실은 수염이 따가운 배 나온 아저씨... ㅎㅎ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우린 작별을 했다.
오늘 제일 먼저 갈 곳은 퐁텐 드 보클뤼즈. 바위산이 멋진 북한산과 제주의 에메랄드빛 원앙폭포를 합쳐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프랑스에 와서 등산이라니... 뭐 어울리진 않지만 아침부터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걸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다. 물이 엄청 맑은데 물빛이 초록색이기까지 해서 완전 신비롭다. 그런데 이렇게 비현실적인 에메랄드빛 물에서 카약(?)을 타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남쪽이어도 물놀이를 하기엔 추울 텐데... 몸이 물에 젖는 것도 아랑곳 없이 신나게 카약을 즐기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다음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꼽힌 고흐드. 눈이 부시게 따뜻한 햇살에 하늘은 파랗고 흰 구름은 뭉게뭉게, 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초록빛 가로수와 드넓은 초원. 내 눈이 초록색으로 정화되는 기분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펼쳐진 예쁘고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고흐드에 도착했다. 고흐드는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배경이 된 곳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뽑힌 곳이란다.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절벽 위에 세워져 어느 곳에서 봐도 전망이 너무너무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곳에 주차까지 공짜로 하다니 오늘은 일이 잘 풀리려나 보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마을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반대편 전망대로 갔다. 전망대에서 보니 '우와~~~' 너무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끊임없이 감탄사가 나온다. 그동안 목숨줄처럼 꼭 붙잡고 있던 가방까지 잠시 내려놓고 한참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 정말 평화롭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붉은 절벽마을인 루씨옹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아름답고 한적한 길을 따라 20분 정도 운전을 하다 보면 붉은 마을이 보인다. 마을 입구에 주차를 하고 보니 왠지 공짜일 것 같아 마을분한테 물어보니 주말이라 그런지 진짜 공짜란다. 웬일이라니~ 오늘 연달아 공짜 주차라니 운이 좋다. 마을을 둘러보기 전에 작은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렌터카 반납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마을을 돌아보고 마르세유로 향했다.
6시까지 마르세유 역에 반납을 해야 하는데 짐이 있으니 호텔에 체크인을 먼저 하고 반납을 하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정도를 달려 마르세유 톨게이트에서 티켓을 넣고 톨비를 지불하고 나갔는데, 이상하게 한참을 더 달려도 계속 고속도로인 거다. 어찌 된 거지? 티켓을 다시 받아왔어야 했나? 다시 톨게이트가 나오면 어쩌지?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표지판에 나오는 대로 130km 속도로 달려 15분 정도 더 다행히 다른 톨게이트 없이 마르세유에 도착했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마르세유에 들어서자마자 길이 엄청나게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호텔 근처에 있다는 주차장은 몇 바퀴를 돌아도 보이질 않는다. 구글맵은 계속해서 일방통행길로 가라 하고 가다 보면 길이 없고 정말 미치겠다. 이러다 반납 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렌터카 반납부터 하기로 하고 먼저 주유소를 찾았다. 반납할 때 기름을 가득 채우지 않으면 70유로 정도를 더 내야 해서 주유소를 찾았는데 처음 찾은 곳은 문을 닫았고 간신히 찾은 다른 곳은 분명 영업 중인데 기름을 넣으려고 하니 지금 주유를 할 수 없단다. 아니 주유소에 기름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안 판다는 건 대체 뭔지...
아무리 찾아도 주유소는 찾을 수 없으니 주유는 포기하고 반납 장소를 찍고 갔으나 아무리 찾아도 반납 장소가 안 보인다... 어젯밤 검색해놓은 마르세유의 다른 AVIS에 전화해서 간신히 사무실에 도착했다. 처음엔 여기서 반납을 해주겠다며, 여기가 마르세유 역보다 더 싸다고 하더니 니스에서 보험사기당한 얘길 꺼내자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더니 반납 장소가 아니라 여긴 안 된다. 원래 반납 장소인 마르세유 역으로 가라. 우리가 벌써 6시 30분인데 영업 종료된 거 아니냐 했더니 거긴 8시까지 하니까 괜찮다고 한다. 다시 물어봐도 확실히 8시까지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직원이 찍어준 주유소를 들러 주유부터 하러 갔는데 어렵게 찾아간 곳이 하필 아까 문 닫았던 그 주유소... 정말 한숨밖에 안 나온다. 결국 주유는 포기하고 간신히 반납 장소로 찾아갔으나 문이 닫혀있다. 여기도 주말엔 6시 30분이면 영업이 끝나는 거였다.
이런 나쁜 새끼... 그냥 내일 반납하러 가라고 하면 될 것을 이미 닫은 줄 다 알면서 자기네가 반납받기 싫으니까 우릴 여기로 보내??
욕이 절로 나온다. 마르세유 와서 왜 이리 일이 꼬인다니... 이제 어떡하지... 차를 버릴 수도 없고... 다시 호텔로 가는 수밖에 없으니 아까 헤매다 본 인디고 주차장을 찍고 갔다. 토요일이라 노란조끼 시위까지 있어서 그런지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구글맵은 제멋대로고... 그러다 신호 대기 중에 잠시 서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차 뒷문이 확 열리더니 하난지 둘인지 흑인 남자가 우리 뒷자리로 들어와 손으로 막 휘졌는다. 순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르겠고 너무 무섭고 놀라서 둘 다 소리만 질렀다. 다행히 뒷좌석엔 아무것도 없었고 잃어버린 것도 없었지만 나한테 이런 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터라 손발이 부르르 떨리고 말도 잘 나오질 않았다. 너무 놀라서 그런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파리 소매치기만 걱정했지 마르세유에서 이런 일을 당할 줄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했는지 모른다...
호텔에 도착했다.체크인을 하고도 한참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체 우리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좀 웃기지만 그래도 마지막 남은 컵라면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일단 먹어는 보는데 도통 무슨 맛인지를 모르겠다. 국물만 조금 먹고 씻은 후 자리에 누웠다. 내가 대체 왜 렌트를 했던가... 내일 차는 반납할 수 있을까... 한국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후회와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