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도사건 때문에 놀라서 그런지 밤새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이 됐다.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아 창밖을 내다봤는데 번화가에 있는 4성급 호텔 앞인데도 사람들이 약 먹은 사람처럼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길거리에 돌아다닌다. 무섭다... 마르세유 치안이 이렇게 안 좋은 건가? 대충 씻고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불안해서인지 아침밥도 잘 넘어가질 않는다.
날이 밝아질 때까지 기다려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겨둔 채 호텔 직원에게 주유소를 물어 주유소를 찾았다. 그러나 여전히 길은 복잡하고 구글맵은 우릴 쉽지 않은 길로만 안내한다. 한 번 출구를 놓치니 10분 이상 돌아가야 하고 어렵게 어렵게 찾은 주유소는 사람도 없고 주유하는 방법도 모르겠다. 이제 주유는 진짜 포기다. 마르세유 역 주차장에 차를 반납하고 사무실 문 열기를 기다렸다. 10시부터 문을 연다는 데 딱 5분 전에 직원들이 출근을 하고 10시가 넘어서야 사무실 불이 켜진다. 직원에게 바우처를 보여주고 상황을 설명하니 니스 사무실에서 강매를 한 것 같다며 자기들이 취소해줄 순 없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내면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무책임한 말만 한다. 말도 안 통하는데 우리더러 직접 해결하라니... 일단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으나 일요일이라 통화가 안 된다. 현재로선 해결방법이 없으니 일단 반납을 하고 나왔다.
사기당한 건 여전히 분했으나 골칫거리인 차를 반납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이제 드디어 한국에 돌아갈 수 있다~~~!!! 출국까진 시간이 꽤 남아서 이미 오만정은 떨어졌지만 마르세유를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역을 나오자마자 무서워 보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제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길거리의 흑인 남자들 패거리가 다 강도로 보인다. 무섭다... 두려운 마음에 둘이 팔짱을 꼭 끼고 붙어 다녔다.
마르세유 개선문(파리 개선문을 보고 난 후라 아무 감흥이 없음)- 벽화골목(그라피티는 나름 멋지지만 개똥이 천지)-마르세유 대성당(생각보다 훨씬 멋진 성당)-마르세유 항구(대관람차, 비싸고 멋진 보트)-베트남 식당(소고기 쌀국수와 새우볶음밥. 새우볶음밥은 완전 우리나라 중국집 볶음밥 맛!)-까르프(살 게 없어서 과자를 잔뜩 샀더니 엄청 무거움)-호텔에서 공항까지 픽업 서비스(싱글벙글 유쾌한 기사님과의 즐거운 대화)-마르세유 공항(면세점 쇼핑)-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경유(2시간, 면세점 쇼핑)-인천공항(10시간)-공항버스(3시간)-집(집에 오자마자 한밤중에 김치랑 밥 먹음)
암스테르담에서 한국까지 오는 비행기에 붙어있는 좌석이 없어서 따로 앉았는데 내 자리 양쪽에 외국인 남자가 앉았다. 중간자리만으로 힘든데 외국 남자라니... 화장실 가긴 틀렸구나 생각하고 앉았는데 비행기에 타니 잠이 미친 듯이 쏟아진다. 집에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가... 그동안 못 잔 잠을 다 채우기나 하려는 듯이 잠이 쏟아진다.
그렇게 한참을 자다 살짝 깼는데 세상에! 내가 오른쪽에 앉은 외국 남자 어깨에 기대서 자고 있었다. 너무 놀라 미안하다고 계속 얘기했더니 그 남자는 웃으며 괜찮단다. 다시 보니 나 편하게 자라고 아예 베개를 자기 어깨에 대 주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잠이 들었는데 아마도 또 그 남자 어깨에 기대서 잤나 보다. 내가 미쳤나 보다.... 그 남자는 얼마나 불편하고 무거웠을까?... 그런데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참아주다니...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부끄럽고 미안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나중에 비행기에서 내리고 얼굴을 마주쳐서 인사는 하긴 했지만 진짜 미안했다. 영국인인것 같았고, 한국엔 친구들과 같이 놀러 온 듯 보였는데 더 이상 말을 건넬 순 없었다. 영화에서라면 이런 게 인연이 되기도 하던데 그 남자도 나도 영화 속 주인공들과는 한참 다르니... 그냥 재밌는 에피소드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정말 많은 걸 보고 느끼고, 내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고도 있었다. 그리고 렌터카가 없었다면 절대 가볼 수 없는 아름다운 마을도 가보고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드라이브도 했지만 앞으로는 소매치기, 차량 강도? 이런 스트레스 없는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 또 다시는 외국에서 운전을 하겠다는 무모한 도전은 절대 하지 않을거다. 가기 전엔 몰랐는데 막상 운전을 하다 보니 생각처럼 남프랑스의 모든 길이 한적하기만 한 건 아니었고(도시로 들어가면 정말 좁고 복잡해지고 주차장 찾기도 엄청 어려움, 게다가 우리 차는 쓸데없이 컸음 )'여기서 사고가 나면 어쩌지?, 한국에 못 돌아가면 어쩌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엄청 무섭기도 하고 내내 스트레스였다. 아마 당분간은 유럽은 안 갈 것 같지만 사람 마음은 알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