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새벽에 눈이 떠지고 잠이 오지 않는다. 프랑스에 온 후로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국은 점심때쯤 됐을 것 같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렌터카 예약 여행사 직원에게 상황을 메일로 적어 카톡 아이디와 함께 보냈는데 바로 톡이 왔다. 풀커버 보험에 가입된 건 다시 확인했고 아마 현지 렌터카 직원이 상술로 다른 보험을 또 들게 한 것 같단다. 한마디로 사기를 당했다는 거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파리에서도 별일이 없었는데 니스에서 사기를 당하다니... 액땜했다 쳐야 하나? SG워너비까지 들먹이며 사기 친 걸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쁘지만 전화를 한다고 취소해 줄 것 같지도 않으니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암튼 오늘은 샤갈의 무덤이 있는 생 폴 드방스와 향수의 도시 그라스를 다녀왔다. 생 폴 드방스는 어제 갔던 에즈 빌리지랑 느낌이 비슷하다. 골목골목 가는 길마다 예뻤지만 어제 에즈 빌리지를 갔다 와서 그런지 감흥은 덜했다. 그래도 그림으로만 알고 있던 샤갈의 무덤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는데, 샤갈의 무덤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하게 꾸며 놓은 게 없다는 점이 더 신기했다. 전생에 누구였든 어떻게 살았든 죽으면 누구나 다 똑같다. 무덤 하나 덩그러니 남는 게 인생인가 보다. 그리고 공동묘지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있었다. 엄숙하면서도 뭔가 그로테스크하기도 하고... 사방이 고요해서 그런지 시간이 멈춘 공간 같았다.
그라스에서는 향수박물관과 무슨 국립 역사박물관이랑 구시가지를 돌아봤는데 향수박물관은 공사 중이어서 볼 게 없었고 역사박물관도 오래된 물건들이 많은 것 빼고는 특별한 건 없었다. 구시가지를 둘러보다가 골목에 베트남인지 중국인지 정체모를 작은 식당이 보여 일단 들어갔다. 혼자 온 여행객이 먹고 있는 볶음밥과 돼지갈비로 보이는 게 맛있어 보여서 시켜봤으나 맛은 나쁘지 않은데 이상하게 밥이 들어가질 않는다. 잠도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으면 살이 빠져야 하는데 그건 또 아니니 속상할 뿐~ 거의 먹질 못해 포장을 해달라고 했으나 먹을지는 의문이다.
이제 오늘의 숙소인 엑상프로방스로 출발! 근데 도착 예정 시간이 차량 GPS랑 WASE앱이 다르다. 심지어 구글이랑도 차이가 난다. 내비 2개(하나는 영어, 하나는 불어)를 켜고 다니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둘이 가라는 곳이 갈라지면서 멘붕이 시작됐다. 이걸 따라가다 보면 저게 엉뚱한 방향이고... 저걸 따라 가면 이게 계속 경로를 이탈했다고 난리고... 근데 1시간 이상 달렸는데도 이상하게 니스라는 글자가 보인다. 니스는 반대방향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구글맵을 켜보니 진짜 반대로 갔다. 헐.... 1시간을 거꾸로 갔으니 다시 길을 돌아와서 액상프로방스에 가는 시간까지 4시간이 더 걸린다. ㅠㅠ 운전이 힘든 건 둘째치고 이러다 오늘 안에 갈 수는 있는 건지 고속도로를 무사히 살아나갈 수 있는 건지 겁이 나기 시작한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프랑스 여행 온 한국인 여성 2명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세상에 아는 사람 하나도 없이 우리 둘만 사지에 내던져진 듯한 막막한 이 기분... 누가 우릴 좀 구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릴 구해줄 사람은 우리뿐! 내 오른발과 양손을 믿을 뿐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겨우겨우 부여잡고 운전을 해서 몇 시간을 돌고 돌아 호텔 근처까지는 왔으나 이번엔 주차장 찾기가 문제다. 호텔 근처 주차장에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호텔 직원한테 물어보니 거기가 아니란다. 주차료가 어마어마하니 어쩔 수 없이 짐만 방에 넣어두고 다시 차를 빼서(그 잠깐 사이에 3.4유로라니...) 호텔 전용 주차장에 파킹 했다. 물론 여기도 공짜는 아니다. 호텔 이용객에게 50프로 이상 할인을 해준단다.
남프랑스를 제대로 보기 위해 부담감을 안은 채 어렵게 선택한 렌터카 여행인데 시작부터 사기를 당하지 않나, 길 찾기도 어려워, 주차도 힘들어, 주차비도 비싸, 톨비도 비싸, 운전도 힘들어.... 아직까진 뭐하나 좋은 게 없다.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그림이 아닌데... ㅠㅠ 이 또한 지나면 추억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