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동안 꽃이 핀다 하여 백일홍(목백일홍), 나뭇가지가 간지럼을 탄다 하여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리고, 간지럼 타는 모습이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부끄럼나무라고도 부른다. 색깔도 흔하게 보이는 진한 핑크색부터 흰색, 보라색, 붉은색 등 다양하다.
코로나 시국에, 연휴까지 겹쳐 사람 많은 곳은 가기가 두렵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을 찾으니 영동에 있는 반야사였다. 내가 가끔 찾는 반야사는 호랑이로 유명한 절이다. 오랜 세월 동안 산에서 흘러내린 돌무더기가 신기하게도 호랑이 모양인 거다.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 호랑이한테 소원을 빌면 들어준단다.
흘러내린 돌무더기가 호랑이를 닮았다
사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명옥헌은 너무 멀어서 갑자기 훌쩍 떠나기는 어렵다. 그리고 배롱나무꽃의 개화시기를 딱 맞추기도 쉽지 않다.
반야사에는 500년이 넘은 어마어마한 배롱나무 두 그루가 석탑 뒤에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 개화시기만 잘 맞추면 딱이겠다 싶었다.
이틀 전에 만개했다는 어느 블로그의 사진을 보고 이때다 싶어 점심을 먹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 자주 다니는 길이지만 오늘따라 구름이 뭉게뭉게 예쁘다. 초록색이 가득한 길을 지나 반야사에 도착했다.
몇 달 전부터 절 안에 건물을 하나 짓고 있어서 어수선함이 좀 있었지만,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소담스럽게 핀 배롱나무꽃을 보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와~~~ 너무 예쁘다. 개화시기를 딱 맞춰왔다는 기쁨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배롱나무꽃은 완전 절정을 맞이한 듯했다. 막연하게 오늘 밤이 지나면 절정이 지나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조차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들 어떻게 아셨는지 대포 카메라를 든 사진사분들도 몇 분 계시고, 작정을 한듯한 예쁜 원피스에 모자를 쓴 여자분이 사진의 모델이 되어주고 있었다.
'나도 사진을 찍고 싶다고요. 오롯이 배롱나무꽃만 찍고 싶습니다.' 속으로 빨리 촬영이 끝나길 기다리며 조바심이 났다. 나의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는지 다행히 모델의 촬영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드디어 배롱나무꽃을 오롯이 앵글에 담았다. 사진사분들의 대포 카메라 옆에 있으니 더욱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3년 된 나의 갤노트도 쉴 새 없이 배롱나무꽃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찍어도 눈으로 보는 것만큼 예쁘게 담기지는 않았다. 그래도 만개한 500년 된 배롱나무꽃은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두고 오는 게 아쉬워 뒷걸음질을 치며 배롱나무꽃을 눈에 마음에 담았다.
그리고 나서야 반야사 돌다리를 건너 둘레길을 산책했다. 배롱나무꽃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눈과 마음을 정화시키기에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