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니 Nov 20. 2023

영어에게 건네는 화해

앞으로 영어를 잘하게 될 것만 같아!

대부분의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영어를 할 수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필수 과목으로 들어가 있기도 하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동경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기도 하니까. 보이는 것이 중요한 한국사회에서 남들보다다 우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영어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정말 못한다. 단어를 비롯해서 문장을 만들기도 어려워한다. 영어를 처음 배우던 날 다시는 영어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피하고 싶고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처음 영어수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영어를 처음 배울 생각에 큰 기대감을 품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어떤 걸까?'


선생님이 문을 열었고 북적였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수업을 시작하기 위해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영어 수업을 시작할게요. 첫 시간이니까 영어로 자기소개 발표를 해보겠어요."


선생님은 왼쪽에 있는 테이블 학생부터 차례대로 발표시켰다. 그때부터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나는 영어를 한 번도 배워본 적 없었기 때문에 영어로 자기소개를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수줍음이 많아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도 부끄러워하는데, 영어를 잘 못해서 비웃음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난 영어를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영어로 자기소개를 할 수 있지?'


더 절망스러웠던 것은 친구들이 모두 자기소개를 유창하게 했다는 것이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발표를 잘 못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은 이미 학원을 다녀서 영어로 자기소개쯤은 할 수 있었다. 알파벳도 모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내 차례가 왔다. 결국 나는 일어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부끄러워서 조용히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선생님이 용기를 준답시고 말을 한번 더 건넸지만, 나는 그게 너무 짜증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소리치고 싶었던 것 같다. 


"영어를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란 말이에요!"


아무것도 모르고 가만히 서있는 내 모습이 민망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영어를 시키는 선생님이 미웠고, 진작에 미리 학원 보내지 않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그때 어렴풋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앞으로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이 없겠다고 예상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잘못이 없었음에도, 나는 이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느끼며 살았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남들보다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영어에 완전히 손을 놓았고, 때문에 실력은 아주 기초적이다.


나는 한 달 전 유럽여행을 45일간 다녀왔다. 그 기간 동안 외국인 친구를 꽤 많이 사귀게 되었다. 이때 친구들과 소통의 한계를 느꼈고, 처음으로 영어를 잘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런 좋은 동기가 생긴 덕분에 지금 한국에서 영어회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이 공부가 하루의 많은 즐거움을 차지하게 되었다. 과거에 생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활동이 되기도 한다.


어릴 적의 경험을 통해 나는 영어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포기하도록 만드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북돋아주며, 모르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다.


그날의 나를 위로하고 싶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를 꽉 안아주며 말해주고 싶다.


"많이 놀랐지? 너는 아무 잘못이 없어. 괜찮아."

"오랜 시간 너를 탓해서 미안해."

작가의 이전글 몸과 마음의 기초체력 만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