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성 삼촌의 등굣길 동행
조카 지안이가 벌써 여덟살이 되어서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누구보다 지안이의 입학식을 고대해왔던 나는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가족들이 입장하지 못하는 축소된 입학식을 치른다는 말에 망연자실했다. 그런데 이틀 뒤 지인 분의 가족 부고 소식으로 인해 결국 서울에 갈 일이 생기게 되었다. KTX를 타고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입학식 대신 지안이 등굣길 모습이라도 사진으로 담아주고 싶었던 나는(극성이다) 차에 이것저것 짐을 챙겨서 운전으로 서울에 갔다. 그리고 하루 더 지안이네서 묵기로 했다. 지난 명절에도 사정이 생겨 아이들을 못 봤기 때문에 그 마음은 더 간절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당연히 콩나물처럼 빠르게 자라 있었다. 올해 다섯살인 해수는 더 말이 늘어서 쉴 새 없이 쫑알쫑알 새처럼 떠드는 데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한참 바라보았다. 지안이는 이제 의젓해져서 동생이 하는 짓궂은 농담이나 과장에 그저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침 일찍 일어난 아이들이 내가 자고있던 방에 들이닥쳐서 나를 깨웠다. 양쪽으로 시끌시끌… 삼촌이 하루 자고 간다는 게 아이들에겐 참 신나는 일인가보다. 생각해보니 어릴적에 나도 집에 손님이 놀러와서 자고간다고하면 그랬던 것 같은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누나와 함께 지안이 등굣길을 함께 했다. 큼지막한 카메라를 들고 그 모습을 열심히 찍었다. 아침부터 유난을 떠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누나의 만삭 때부터 사진으로 아이의 성장을 기록했던 나는 뒤돌아서면 자라 버리는 지안이의 모습을 놓칠 수가 없었다.
교문에 도착해 경비아저씨께 양해를 구하고 운동장에 서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리고 서둘러 작별인사를 했다. 큰 가방을 메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지안이의 뒷모습을 보니 여러 감정이 들었다. 난 초등학생 시절에 좋았던 기억만큼 혼란스러웠던 기억도 많다. 그렇다 보니 아이가 혼란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만 같은 묘한…그리고 짠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삼엄한 교문 앞 전경이 그 마음에 더 무게를 실었다. 어른으로서 약간의 부채감을 느끼며 지안이가 보다 즐겁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나도 더 공부하고 발전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잡으면서 강릉으로 돌아왔다.
차를 타고 강릉으로 돌아올 때 강풍이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며칠째 강원도 전체가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춘기 시절 속초에서 살 때부터 겪었던 굵직굵직한 봄철 대형 산불들이 떠오른다. 겨울을 겨우 견디고 봄을 기다리던 산들이 쑥대밭으로 변하는 모습을 그저 뉴스로 바라볼 수밖에 없음에 가슴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