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좀 봐. 저 사람들은 기내식이 우리랑 다르네.”
“미리 신청한 건가?”
“우리 옆줄도 달라.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서울에서 출발해 모스크바 공항에서 내린 후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런던으로 가는 중이었다. 공항이 무서울 수도 있다는 걸 모스크바에서 처음 느꼈다. 입국 심사를 받을 때 벨트는 물론 신발까지 벗어 수거함에 넣어야 했고 직원들 표정은 무심하다 못해 차가웠다.
다음 비행기 탑승까지 몇 시간이 남아 모스크바 공항 내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타야 할 비행기가 연착됐지만 모니터에만 뜰 뿐 아무도 안내를 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외국인 승객 몇 명이 데스크에 있는 직원에게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언제 출발 하는지 물어보았다. 직원은 승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파리가 윙윙거려 귀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기 할 일만 하고 있는 직원을 보며 데스크 앞에 선 승객들은 황당해했다. 그 중 승객 한 명이 목소리를 높여 다시 물었다. 그러자 직원이 불쑥 고개를 들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Fxxx you"
순간, 사방이 고요해졌다. ‘아, 여기는 러시아구나.’ 욕설을 들은 승객은 너무 놀라 붙박이가 되어 버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조용히 얼굴을 돌렸다. 침묵의 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를 탔다(나중에 비행기가 런던 공항에 착륙하자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우리 마음도 그제야 밝아졌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잠시 후 기내식이 나왔다. 다른 기내식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기내식이 훨씬 맛있어 보였다.
“저 사람들은 러시아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 인가봐”
“한국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는 주위를 힐끔거리며 속삭였다. 그러다 뒷좌석의 대화를 들으며 이유를 알았다. 우리가 구매한 비행기 표는 저가항공사에서 특가로 나온 거다. 해외여행을 갈 때는 항상 저가항공을 이용한다.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저가항공은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걸 보면 괜찮은 것 같다.
우리도 국적기를 타고 싶지만 너무 비싸다. 이번에도 가장 저렴한 비행기 표를 골랐다. 70만원 대였다. 우리와 달리 대한항공을 타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140만원 대에 구매를 했다. 국적기를 타고 왔던 사람들 역시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를 환승했다.
현재는 대한항공이 러시아와 제휴를 잠시 중단한 상태이지만 그때만 해도 대한항공과 러시아는 글로벌 항공사 동맹(얼라이언스)을 맺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 저가항공 비행기 표를 끊은 사람과 대한항공 비행기 표를 끊은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이다.
상황을 알고 나니 그들에게 제공된 고급 기내식이 부럽지 않았다. 돈을 많이 냈으니 당연히 더 좋은 걸 먹어야지.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비행기 안에는 대한항공 승무원도 있었다. 한국어로 요청할 수 있어 얼마나 마음이 편하던지. 러시아 승무원밖에 없었다면 무서워서 한마디도 못했을 거다.
국적기의 사전적 의미는 ‘한 나라에 소속되어 있는 비행기’를 뜻한다. 사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제주에어, 진에어, 티웨이 항공, 에어부산도 한국 비행기에 속하니 국적기로 불러야 한다. 하지만 이런 비행기는 저비용 항공사라 부른다.
그렇다면 국적기의 정체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국적기는 국가 이름이 들어가고 해당 국가를 상징하는 문양이 사용된다. 항공사 이름으로 국적을 분명하게 알 수 있기에, 여행업계에서는 각국의 최초 항공사나 대표 항공사를 국적기라 부른다. 국적기는 공식용어라기보다는 여행사 직원들이 편의상 부르는 이름으로 이해하면 된다.
저비용 항공사 티켓을 끊었지만 비행기 연착으로 국적기로 갈아탄 적이 또 있다. 인천에서 출발해 베이징을 거친 후 홍콩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베이징에서 환승을 해야 했는데 비행기 결함으로 8시간이나 연착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문제 해결이 안됐는지 항공사 측에서는 다른 비행기로 바꿔 주었다.
국적기인 타이거 항공이었다. 국적기답게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보다 훨씬 크고 당당한 자태였다. 기내식이 나왔고 기대에 부응하듯 맛있었다. 국적기는 다르구나. 여기 화이트 와인 한 잔이랑 맥주 한 병 더 주세요. 우리는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다.
정리하려는데 가만, 저건 또 뭐지? 승무원이 승객에게 뭔가를 하나씩 나눠준다. 미니컵 아이스크림이다. 디저트를 또 준다고?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저렇게 비싼 아이스크림이 공짜야? 공짜 맞아?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며 기다리느라 지쳤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다. 8시간 연착이면 어때. 하겐다즈를 주잖아.
도쿄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도쿄에서 3일 더 머무르기로 계획을 짰다. 일요일 저녁 출발이라 가격이 비싸다. 다음날 오고 싶지만 회사에서 모과가 맡은 프로젝트가 한창이라 어쩔 수 없다. 이번에 타는 비행기는 티웨이다. 국적기와 별 차이 없는 가격이지만 몇 만원이라도 아끼면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