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가의 비밀

by 유자와 모과

크루즈 특가라는 말에 해외여행을 가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볍게 던져 버렸다. ‘특가’는 마음을 홀리는 단어다. 언젠가 모과가 싱가포르 특가 항공권이 나왔다고 했다. 이상하게 평소보다 50%나 싸다는 거다. 뭐? 반값이라고? 그럼 마감되기 전에 예약해야지, 뭐하고 있어. 모과는 서둘러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흐뭇했다. 일주일 후, 우리는 비행기 표가 그토록 저렴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2014년 쿠알라룸푸르에서 출발해 베이징으로 향하던 말레이시아 비행기 한 대가 인도양에서 사라졌다. 비행기에 타고 있는 승객 239명도 전원 실종되었다.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사건이다. 네 달 후, 암스테르담에서 이륙해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말레이시아 항공 한 편이 우크라이나 미사일을 맞아 격추되었다. 탑승객 298명은 모두 사망했다. 둘 다 동일 기종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우리가 결제한 비행기는 말레이시아 항공이다. 그게 어떤 기종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어쩐지, 너무 싸긴 하더라. 그 후 전 세계적으로(아마도?) 말레이시아 항공은 절대 타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항공사는 적자를 모면하기 위해 파격적인 할인을 내세웠던 거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결제를 끝냈다. 마음도 싱가포르에 도착해 있었다. 남들이 미쳤다고 할까봐 여행 간다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결국 말레이시아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 안이 그렇게 텅 빈 경우는 처음이었다.


우리가 예약한 크루즈 상품은 식사는 전부 무료로 제공되지만 음료나 술은 돈을 내고 마셔야 한다. 술(12달러 이하 주류 1일 최대 15잔), 커피, 스무디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패키지 요금이 따로 있다. 1박당 50달러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선택할만하다.

세금은 포함이라고 적혀 있지만 선상 팁은 별도다. 선상 팁이란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에게 지불하는 것으로 일인당 매일 14.5달러가 부가된다. 하선하는 날 카드로 지불한다. 그걸 제외하고는 특가 상품이라고 해서 차별받는 게 없다. 그러니 태풍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결제하는 게 낫겠지. 설마 회사가 태풍 하나 고려 안하고 날짜를 정했겠어?


파파고 번역기를 돌려 환불 규정을 확인한다. 환불 받을 수 있는 케이스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승객 계약서(Passage Contract)를 살펴보면 ‘기계적 고장으로 인해 예정된 크루즈가 취소되는 경우, 승객은 크루즈 운임 및 세금, 수수료 및 항만 비용을 전액 환불받을’ 수 있다.

악천후로 인해 크루즈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크루즈 여행 중 태풍으로 여행이 조기 종료 된다면 승객은 남은 날짜에 관한 비용만 환불받을 수 있다. 악천후 때문에 꼼짝 못하고 바다에 떠 있거나 근처 다른 항구에 정착하게 되면 크루즈 사는 승객에게 추가 비용 없이 숙박 및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 오호 괜찮은데?


악천후는 아니었지만 크루즈가 항구에서 옴짝달싹 못한 적이 있었다. 2020년 2월 3일,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하려는 과정에서 크루즈에 탑승한 승객 중 다수가 코로나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정부는 확진자와 증상자를 제외한 모든 승객을 크루즈 객실 내에서 대기시켰다.


2월 19일에서 27일까지 단계적으로 승객 하선이 이루어졌다. 강제적으로 2주 넘게 배 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승객들은 추가 비용 없이 숙박 및 음식을 제공받았다. 심지어 크루즈 측은 승객들에게 크루즈 비용 및 크루즈 탑승 이전/이후의 호텔숙박비, 기항지 관광 투어비, 선내에서 이용한 서비스 등에 대한 전액을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두 달 후 우리가 타야할 선박이다. 특가의 비밀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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