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을 입금했다. 엔화가 싼 시기라 빨리 환전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도 까먹었다. 해외여행이 이렇게 귀찮은 일이었다니. 예전에 어떻게 다녔는지 몰라.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환전이다. 어떻게 하면 90% 우대를 받을 것인가? 95% 우대는 정말 없는 것인가? 얼마를 바꿔야 적당할까? 수중에 현금은 얼마나 지니고 있어야 할까? 고민되는 부분이 많다.
얼마 전 오키나와를 다녀온 친구가 트레블 월렛 카드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선불식 충전카드다. 핸드폰에 어플을 깔고 카드를 신청하면 며칠 뒤 집으로 실물 카드가 도착한다. 앱에서 돈이 들어 있는 통장을 등록하면 37개 나라의 외화를 언제든 환전할 수 있다. 해외 결제 수수료는 0원이다.
특정 ATM에서 수수료 없이 현금을 뽑을 수도 있다. 특히 달러, 유로, 엔화는 충전 수수료도 0원이다. 100% 우대다. 세상이 갈수록 좋아진다. 환전소를 찾느라, 많은 돈을 지갑에 넣고 다니느라 고생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유럽 여행을 계획했을 때 첫 시작은 런던이었다. 영국은 유럽 연합에 속하지 않기에 파운드를 따로 챙겨야 했다. 모과와 나는 유로와 파운드 환전을 하러 국민은행에 갔다. 직원이 물었다.
“파운드요? 유럽은 다 유로 쓰는데 파운드는 왜 바꾸세요?”
“영국은 파운드 쓰는 거 아닌가요?”
“얼마 전에 영국 다녀 온 직원이 있는데, 유로로 썼다는데요. 잠시만요. 저기 00씨, 그때 영국에서 유로 썼지? 거봐요. 파운드로 바꾸실 필요 없어요.”
“아 그래요? 그럼 유로만 바꾸면 되겠네요.”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들었지만 은행 직원이 필요 없다고 하니 그 말을 믿어야지 어쩌겠어.
밤늦게 런던에 도착했다. 우리는 컴컴한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알게 되었다.
런던은 파운드를 쓴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야 하는데 파운드가 없으니 탈 수가 없었다.
지하철 역사에 환전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찾아보려 내려갔는데 오가는 승객이 아무도 없다.
무서운 마음이 들어 다시 밖으로 나오는 데 지하철 직원이 역사 문을 잠그고 있었다. 잠시만요. 저희 아직 역사에 있거든요. 가까스로 빠져 나왔다. 1분만 늦었어도 밤새도록 역사 안에 갇혀 있었을 거다.
“아니, 왜 런던 지하철 직원들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도 안하고 문을 잠그지?”
“아까 방송에서 계속 영어로 뭔가 떠들었잖아. 그거 나가라는 소리 아니었어?”
“그래? 난 못 들었는데.”
“너 영문과 나왔잖아.”
“너 컴퓨터 전공 했지? 그래서 컴퓨터 잘 고쳐? 영국식 발음은 알아듣기도 어렵거든요.”
우리는 티격태격하며 주변 상점을 빙빙 돌다가 유로를 받아주는 매장을 발견했다.
간식을 샀고 잔돈으로 파운드를 받았다. 간신히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저기요, 국민은행 직원님(어느 지점이었는지는 비밀로 해드릴께요). 영국은 파운드를 씁니다. 그때 저희 심쿵했어요.
모과도 총각 때 환전을 안 해 여행지에서 고생한 적이 있다.
여름휴가 때 모과는 친구와 말레이시아 여행을 떠났다. 호치민에서 하루 머물고 말레이시아로 가는 일정이었다. 그 당시 나는 시드니에 가려고 비행기를 탔다. 하노이 공항에서 8시간 머무르는(스탑오버)하는 초저가 항공편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여성 두 명도 나와 같은 항공편이었다. 비슷한 또래였기에 우리는 다 같이 하노이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공항에서 나와 하노이 시내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미래의 남편이 될 모과와 그 친구가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시내로 가는 버스를 여기서 타는 게 맞나요?”
“네 맞을 거예요.”
우리들은 어정쩡하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오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아저씨 한 명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말했다.
“내가 여기서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는데, 오늘 일정이 다 끝나서 말이야.
나도 한국 사람이라 한국 젊은이들 만나니 너무 반갑네. 듣자하니 여러분들 시내 한 바퀴 돌고 오려나본데, 괜찮으면 내가 현지인들만 아는 좋은 곳들 골라서 무료로 가이드 해줄게.”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기꾼 아냐? 우릴 납치 하려는 건가?
인원이 다섯 명이니 쉽지는 않겠지? 우리는 미심쩍은 얼굴로 아저씨를 따랐다. 그는 멋진 장소들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다. 좋은 시간이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나중에 아저씨가 준 명함을 보니 V&V 부동산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도 사업을 하시려나(그때 감사했어요).
미래의 남편이 될 모과와 그 친구는 달러만 가져왔을 뿐 동으로 환전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시내에서 환전을 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갑자기 공항에서 부동산 아저씨가 나타나는 바람에 다 같이 택시를 타고 이동했기에 베트남 돈이 하나도 없었다.
택시비는 내가 냈다. 그만큼 택시비가 저렴했다. 식당에서는 달러도 받았지만 길거리 음식은 동으로 받는 곳이 많았다. 나는 그 친구들(동갑이었다)에게 베트남 커피도 사줬다.
친구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이 베푸는 친절에 감동했다. 나는 선한 사마리아인 역할을 마음껏 즐겼다.
저녁이 되었다. 나와 언니들은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언니 한 명이 우리에게 오늘 찍은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 줄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 당시는 카카오톡이 없던 순수의 시대였다. 나중에 우리들은 언니에게 메일을 받았다.
미래의 남편이 될 모과는 참조에서 내 메일주소를 발견한 후 따로 편지를 보냈다.
그때 돈을 대신 내줘서 고마웠다고. 꼭 밥을 사고 싶다고.
남편과 나는 환전이 이어준 인연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