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꾸리기

by 유자와 모과

여행을 떠날 때 가장 고민되는 건 옷 챙기기다.

크루즈 여행은 처음이라 어떤 옷을 챙겨야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배 안에 수영장이 있으니 수영복은 꼭 챙겨야 한다.


여름 끝자락이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더우니 반팔만 가져가도 되지 않을까?

선박 내부는 에어컨을 틀어 추우려나? 가디건을 가져가야 할까?

프린세스 한국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선상에서 입으면 좋을 옷차림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짧고 가벼운 바지, 조깅 수트 같은 캐주얼 스포츠 웨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시간에는 스웨터, 재킷 또는 사계절 입을 수 있는 겉옷, 기항지 관광을 할 때엔 목적지의 날씨에 맞는 옷, 저녁시간의 화려한 만찬을 위해 여성분은 원피스, 투피스, 또는 드레스를 남성분은 정장 또는 턱시도 추천’ 이라고 적혀있다.


뭐야? 사계절 옷을 다 챙기라는 말이잖아!


짐 없이 가볍게 떠나는 걸 선호한다. 여행지에서 입을 옷도 최소로만 가져간다.

그동안은 이 방법이 통했는데 미국 여행에서 추위로 호되게 당한 후 생각을 살짝 바꿨다.

몇 년 전 인터넷으로 찾아 본 뉴욕의 6월 날씨는 한국보다 따뜻했다.

반팔과 긴팔만 챙겨갔다.

하지만 피부에 닿는 뉴욕 체감 온도는 예상보다 서늘했다.

도착한지 3일째 되던 아침 할렘 가를 방문했다.


가스펠 공연을 하는 거리 연주자들이 있었다.

음악과 그들의 목소리에 반해버린 나는, 그만 가자는 모과 손을 꼭 잡은 채 한 시간이 넘도록 서서 찬양을 들었다. 찬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감기에 걸려 버렸다.


다음날부터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목이 붓기 시작했다.

큰일이었다. 가디건이라도 사려고 의류 매장을 방문했지만 전부 여름옷이었다.

그러다 발견한 아울렛. 아울렛에는 가을 옷이 남아 있었다.

니트 조끼, 가디건, 두툼한 양말, 머플러, 긴팔 등을 잔뜩 사서 겹겹이 입었지만 편도선은 점점 부어올랐다.

다음날은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하루종일 바닷바람이 불었다. 맞아, 여기는 바닷가 마을이지.

타미플루를 사서 먹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낮에는 간신히 힘을 내어 관광을 하고 저녁에는 일찌감치 침대에 누워 끙끙댔다.

잠을 자다 깨보면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1리터짜리 아리조나(Arizona sweet tea)를 홀짝거리는 모과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음료수는 언제 사왔을까 궁금해 하다 까무룩 잠이 드는 날들이었다.


아픈 와중에 와인 투어도 해야 했는데 한국에서 신청한 거라 취소 할 수도 없었다.

술을 싫어하는 모과는 와인 한 잔을 겨우 마셨고, 와인을 좋아하지만 아파버린 나는 와인을 맛보며 행복해하는 관광객을 쳐다만 보았다.

샌프란시스코 숙소에서 마트에서 사온 '양반 전복죽'을 먹으며 생각했다. 앞으로는 완벽하게 짐을 싸겠다고.


다음해 시드니와 멜번 여행을 떠났다.

한국의 6월 날씨와 비슷한 시기였다.

평소 같았으면 여름옷과 긴팔 정도만 챙겼을 테지만 더 이상 속지 않으리.

호주는 섬나라다. 섬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바닷가 마을은 한여름에도 찬바람이 불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다행히 시드니는 본다이 비치 야외 수영장에서 바다 수영을 해도 될 정도로 더운 날씨였다.

멜번 기온은 완전 달랐다.

우리는 바닷가 마을인 아폴로 베이에서 하루를 머물렀는데 그곳 날씨는 초겨울이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나와 남편은 패딩을 꺼내 입고 두툼한 목도리를 두르고 여유롭게 바닷가를 돌아다녔다.

날씨가 추울 거라 예상 못한 관광객들은 얇은 옷을 입고 오들오들 떨며 식당이나 카페에만 머물렀다.


다음 날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를 신청했다. 12인승 관광 미니밴은 한국 여행객들로 꽉 찼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 절벽을 따라 하루 종일 구경하는 코스였는데 모두 반팔이나 긴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다들 두꺼운 옷을 챙겨오지 못했던 거다. 저런. 큰일났네. 속으로 생각했다.

절벽에 다다르자 찬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관광지에 도착할 때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재빨리 뛰어가 사진만 찍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밴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나중에는 볼 만큼 봤다며 아예 차에서 나오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패딩으로 무장한 우리는 한적한 절벽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을 찍고, 바위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자기야, 샌프란시스코에서 아프지 않았다면 오늘 같은 날도 없었을 거야.

바람 부니 시원하다. 그치?


그래, 아무래도 사계절 옷을 다 챙겨가야겠다. 바닷바람은 무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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