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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r 18. 2024

작품성? 예술성?

서점에서 새로 나온 신간을 구경합니다. 

이런 건 나도 쓰겠다 생각이 드는 책을 발견합니다. 

표지도 근사하고 제목도 좋아 책을 펼쳤는데 내용이 허술하거나 요즘 트렌드에 후다닥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원고가 책으로 출판되었지?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양심이 뒤통수를 때리며 말합니다. 

‘그래서 넌 책 몇 권이나 썼니? 잘난 척 그만하고 책상에 앉아 글이나 써.’ 

한 대 맞으면 정신이 번쩍 들지요. 

저 역시 별것도 아닌 책이라고 독자가 비웃을지라도 별것도 아닌 책이라도 완성하는 작가가 되고 싶기에 집으로 돌아가 책상에 앉습니다. 


 창작을 하다보면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은 소망이 생깁니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창작물을 완성시켜 온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우주의 기운을 받는다 해도 창작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쉽게 완성했지만 두 번째 작품은 진행 속도가 더딜지도 모릅니다. 

첫 번째 작품이 성공을 거뒀다면 두 번째 작품은 폭삭 망할지도 모릅니다.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제대로 형상화 되지 않을 때 주춤하게 됩니다. 

작업을 하다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두고 싶은 유혹이 듭니다. 

그럴 땐 작품성보다는 창작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밀고 나가야 합니다. 


 예술이 아름답다는 기준은 누가 만드는 걸까요? 

창작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프랑스 예술가인 마르셀 뒤샹은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던진 질문을 숙고한 후 상점에서 남성 소변기를 구입합니다. 

변기에 제작년도와 화장품 제조업체 이름을 적습니다. 

1917년 뒤샹은 변기에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여 뉴욕 독립미술과협회전 작품으로 출품합니다. 

새하얀 변기를 마주한 전시회 운영위원들 얼굴이 새하애집니다. 

위원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평범한 소변기가 예술로 전시될 수 있는지 토론을 벌입니다. 

결국 <샘>은 일반인이 볼 수 없는 장소로 철수되었습니다. 


 뒤샹은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기존 예술의 암묵적 개념을 전복시켜 개념 미술이라는 장르를 창조한 개척자가 되었습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던 공산품(ready-made)에 예술의 가치를 부여하다니 얼마나 대범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인가요? 

뒤샹은 창작행위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정신적인 과정만으로도 가능하다고 선언했습니다. 

뒤샹이 창작을 숭고하고 거룩한 어떤 것이라고 여겼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지루해 졌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선두에 서서 예술의 고정관념을 깨버렸기에 데미안 허스트가 포름알데이히가 담긴 수족관에 죽은 상어를 넣을 수 있었고, 앤드워홀이 캠벨 수프 통조림을 무한 복제할 수 있었습니다. 


 내 창작물이 울퉁불퉁하고 못생겨 보여도 괜찮습니다. 

특정 대중을 공략하여 상업적으로 만들어도 좋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굉장한 능력입니다. 

창작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기쁨은 훨씬 커지겠지요. 

다만 창작 목적이 돈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언젠가는 창작에 환멸을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창작을 함으로서 내 존재의 가치를 느끼고 삶의 만족을 얻는 것이 일차적 목표라면 완성된 작품의 질이 높던 낮던, 작품이 팔리건 팔리지 않던 흔들리지 않고 전념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작가 찰스 디킨슨은 그 당시 상업적인 대중작가로 여겨졌습니다. 

문단에서는 그의 문학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지요. 

디킨슨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부지런히 글을 연재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현재는 어떤가요? 

찰스 디킨슨은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상업적이라 비난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을 수도 있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뀌면 작품의 가치도 바뀝니다. 


평가에 얽매이지 마세요. 

어차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최고의 작품을 창조하겠다며 미루기보다는 부족해도 완성하는 게 낫습니다.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 한 켠을 간신히 만지는 작품도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일지라도 그 작품이 마음을 치유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희 아빠는 도전정신이 강합니다. 

일상에 불편한 점이 있으면 머리를 굴려 해결 방법을 찾아냅니다. 

거실 탁자를 손님 올 때만 사용한다면 탁자에 바퀴를 답니다. 

평소에는 협탁 아래로 밀어 넣어 거실을 넓게 사용합니다. 

기성 제품에 아이디어를 더해 아빠만의 작품을 완성합니다. 


아빠는 저와 남동생이 초등학생일 때 이층 침대를 만들었습니다. 

방은 작고 침대 사줄 형편은 안 되는데 각자 사용할 침대는 필요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하셨겠지요. 

톱으로 나무를 잘라 못을 박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만들던 아빠 모습이 생각납니다. 

각진 부분마다 사포질을 하고 니스도 몇 번이나 바르셨지요. 


침대가 없어진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마음속에는 나무침대가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 있을 겁니다. 

목공을 배운 적도 없는 아빠가 저희를 위해 종이에 도면을 그린 후 직접 나무를 재단하고 홈을 파서 완성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창작물의 힘은 이토록 위대합니다. 

인간은 소멸하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영원을 사모합니다. 

창작물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던 간에 이 땅 한 귀퉁이에, 누군가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습니다. 

그러니 멈추지 말고 지금 하던 작업을 계속하여 완성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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